헥토르가 성문 앞에서 쓰러진 뒤였지만(50편),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는 다음이 자기 차례임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오래전에 일러 주었기 때문인데(52편), 헥토르를 죽이면 그의 죽음이 곧 따라온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알고도 성문 앞에 계속 섰다.
죽어 가며 남긴 말
헥토르는 마지막 숨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그대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오. 스카이아 문 앞에서, 파리스와 아폴론의 손에.”
아킬레우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운명은 제우스가 정할 때 받겠소.” 그는 이미 값을 알고 배에 올랐던 사람이다.
다만 아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달랐고, 그는 밤마다 파트로클로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아침이면 다시 갑옷을 입었다.
이어진 싸움들
트로이 편에 원군이 잇달아 왔는데, 먼저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가 왔다. 아킬레우스가 그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투구를 벗겨 얼굴을 보고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고 전한다. 이긴 사람이 이긴 자리에서 굳어 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멤논이 왔는데, 새벽 여신의 아들이었다. 그마저 쓰러지자 트로이의 성벽만 남았다.
스카이아 문 앞
아킬레우스가 성문까지 밀고 들어가자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트로이 사람들이 물러섰다. 성문에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성벽 위에서 한 사람이 활을 들었다. 파리스였다. 활 솜씨로 이름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옆에 아폴론이 서 있었다고 전하는데, 신이 화살의 방향을 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시위가 울렸다.
물이 닿지 않은 한 뼘
화살은 발뒤꿈치에 꽂혔다. 어머니가 아기를 붙잡고 강물에 담글 때, 손이 감싸고 있어 물이 닿지 않은 자리였다(52편).
가장 강한 사람이 그 한 뼘에 무너졌고, 십 년 동안 아무 창도 그를 세우지 못했다. 이름난 궁수도 아닌 사람의 화살 한 대였다.
그는 성문 앞에 쓰러졌는데, 헥토르가 일러 준 그 자리였다.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이미 알고 있던 자리다.
시신을 두고 벌어진 싸움
그가 쓰러지자 양쪽 군사가 한꺼번에 몰렸고, 트로이는 시신을 성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리스는 그것만은 내줄 수 없었다.
아이아스가 시신을 들쳐 업었고, 오디세우스가 뒤를 막으며 창을 휘둘렀다. 두 사람이 함께 그를 진영으로 데려왔다.
그날은 둘이 같은 편으로, 힘으로 업은 사람과 말로 막은 사람이었다. 이 일이 뒷날 두 사람 사이를 가른다(58편).
열이레의 애도
바다에서 어머니가 올라왔고, 바다의 여신들이 그를 둘러싸고 울었다. 군사들은 그 소리에 배로 달아나려 했다.
열이레 동안 진영이 애도하며 장작이 쌓이고 노래가 이어졌다. 그의 유골은 항아리 하나에 담겼다.
그 항아리에는 이미 다른 재가 들어 있었는데, 파트로클로스의 것이었다(49편). 본인이 미리 그렇게 해 달라고 청해 두었다.
저승에서 만난 사람
오랜 뒤 오디세우스가 저승 어귀에 이르러 그곳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살아 있을 때처럼 앞장서 걸어오는 그림자였다.
오디세우스가 위로를 건넸다. “그대는 여기서도 죽은 자들의 왕이 아니오.” 아킬레우스가 그 말을 잘랐다.
“그런 말로 나를 달래지 마시오.” “차라리 땅 한 뙈기 없는 집의 머슴으로 살겠소. 죽은 자 전부를 다스리느니 그편이 낫소.”
오늘, 무적이라는 말
사람들은 그를 무적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야기가 오래 남긴 것은 무적의 자리가 아니다. 발뒤꿈치 한 뼘이다.
지금도 우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아킬레스건이라 부르고, 가장 강한 사람의 이름이 약점을 가리키는 말로 남았다. 이야기가 무엇을 기억하기로 했는지가 거기 보인다.
그리고 그 한 뼘의 자리를 다시 보면, 어머니의 손이 그를 붙잡고 있던 곳이다. 가장 사랑받은 자리가 그의 가장 약한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