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풀려나면서 테를 쓰다

출발 2, 긴고아

읽는 시간 7분 · 무료 공개

Read in English ↗

학습 진도 0/100%

원문 읽기

장안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고비가 왔으니, 산길에서 요괴들이 일행을 덮쳐 삼장만 남고 종자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한 노인이 나타나 그를 풀어 주고는 곧 구름이 되어 사라졌다. 태백금성이었다.

그다음부터 삼장은 혼자 걸었다. 사냥꾼 하나가 산 하나를 넘겨 주었지만, 그 사냥꾼도 경계를 넘지는 못했다.

산 밑에서 들린 목소리

두 산이 맞닿은 곳에 이르렀을 때 땅속에서 소리가 났다. “사부님, 사부님.”

삼장이 놀라 주위를 살피니 돌 틈에 원숭이 얼굴이 끼여 있었다. 머리 위로 풀이 자라 있었다.

“저는 오백 년 전에 하늘을 어지럽힌 자입니다. 관음보살이 저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사부님이 저를 꺼내 주시면 서쪽까지 모시겠습니다.”

삼장이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느냐.” “산꼭대기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습니다.”

오백 년 만에 걷어낸 종이

삼장이 산을 올라가자 꼭대기 바위에 금 글자 종이가 붙어 있었다. 바람에도 비에도 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향을 피우고 절을 한 뒤 손을 뻗어 종이를 떼었다. 오백 년 동안 아무도 떼지 못한 것이 그렇게 떨어졌다.

삼장은 힘이 없는 사람이다. 칼도 술법도 쓸 줄 모르는데, 여래가 손바닥으로 누른 것을 그가 손끝으로 풀었다.

산이 갈라지고 흙이 무너지며 원숭이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사부님이라고 불렀다.

여섯을 죽이고 떠난 자리

며칠 뒤 길에서 강도 여섯이 나타나 칼을 들이대고 짐을 내놓으라고 했다. 오공이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여섯을 모두 쓰러뜨렸다. 숨을 쉬는 자가 하나도 없었고, 그러고는 짐을 챙겨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다.

삼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찌 사람을 그렇게 죽이느냐. 우리는 목숨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오공이 발끈했다. “저놈들이 사부님을 죽였으면 어쩌시려고요.” 삼장은 계속 나무랐다.

오공은 그 말을 견디지 못했다. “그럼 저 없이 가십시오.” 근두운을 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노파가 놓고 간 옷

삼장은 길가에 주저앉았다. 짐을 지고 혼자 갈 수는 없었는데, 그때 노파 하나가 다가왔다.

노파의 손에 옷 한 벌과 모자가 있었다. “내 아들 것인데 이제 쓸 데가 없소. 제자에게 입히시오.”

노파는 주문 하나도 가르쳐 주었다. “그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든 이것을 외우시오.” 삼장이 몇 번 따라 외웠다.

노파는 곧 빛이 되어 올라갔으니 관음이었다. 삼장은 옷과 모자를 짐 속에 넣었다.

입어 보라는 말

오공은 동해 용왕에게 가 있었다. 용왕이 오래된 그림 하나를 보여 주었는데, 신을 세 번 주워 준 젊은이의 이야기였다.

“저 사람이 참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오공은 한참 그 그림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왔다.

삼장은 나무라지 않았다. 밥을 챙겨 주고 짐을 풀자 그 속에서 옷과 모자가 나왔다.

오공의 눈이 그리로 갔다. “사부님, 저것을 제가 입어도 됩니까.” “네가 쓰겠다면 쓰거라.”

오공이 옷을 걸치고 모자를 쓰자 삼장이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 테가 살로 파고들었다.

오공이 땅을 구르며 떼어 내려 했지만 테는 이미 살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삼장이 입을 다물자 아픔이 멎었다.

오늘, 풀어 준 사람이 채우는 사람이다

오공에게 그날은 오백 년 만의 첫날이었다. 산에서 나온 날이자 테를 쓴 날이니, 자유와 매임이 같은 날 왔다.

더 눈여겨볼 것은 사람이다. 그를 꺼내 준 사람과 그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같고, 삼장은 그 둘을 동시에 맡는다.

우리도 누군가를 데려온다. 데려오는 일만 하고 끝낼 수는 없고, 그다음의 어려운 말도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그것을 남에게 넘기면 관계가 둘로 쪼개진다. 좋은 것만 준 사람과 조이는 사람이 따로 생기고, 그러면 조이는 쪽의 말은 끝내 들리지 않는다.

오공은 그날부터 테를 쓰고 걷는다. 그 테를 벗는 날이 언제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벗겨 줄 사람도 씌운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