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지하로 끌려간 딸

올림포스 3 — 페르세포네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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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핀 꽃 한 송이

페르세포네는 데메테르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곡식과 수확을 맡은 여신이었다. 그래서 딸이 걷는 자리마다 풀이 짙게 자랐다.

그날 페르세포네는 동무들과 들판에 있었다. 백합과 제비꽃과 붓꽃을 한 아름 꺾었다. 웃음소리가 들판 끝까지 퍼졌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수선화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크고 고운 꽃이었다. 페르세포네는 동무들에게서 멀어져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 꽃은 저절로 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자리에 미리 피워 둔 것이었다. 딸을 잠시 혼자 두게 만들려는 꽃이었다.

갈라진 땅

페르세포네가 꽃에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발밑에서 낮은 소리가 울렸다. 땅이 갈라졌다.

갈라진 틈에서 검은 말 네 마리가 솟아올랐다. 마차 위에는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가 서 있었다. 그는 페르세포네를 마차에 태웠다.

페르세포네는 어머니를 불렀다. 목소리가 산에 부딪히고 바다까지 닿았다. 하지만 땅은 다시 닫혔고, 들판에는 꺾다 만 꽃들만 흩어져 있었다.

아홉 밤의 횃불

데메테르는 그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서늘해진 채 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들판에는 아무도 없었다.

데메테르는 횃불 두 개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아홉 날 밤낮을 걸었다. 먹지도 씻지도 않고 세상 끝까지 찾아다녔다.

열흘째 되던 날, 헬리오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헬리오스는 해를 몰고 하늘을 건너는 신이었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내려다보는 자리였다.

“딸은 지하 세계에 있소.” 헬리오스가 말했다. “하데스가 데려갔고, 제우스가 그것을 미리 허락했소.”

세상이 자라기를 멈추다

데메테르는 올림포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신들 사이에 앉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 틈에 내려와 오래 앉아 있었다.

그러자 땅에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씨앗은 흙 속에 그대로 있었다. 쟁기질을 해도 들판은 비어 있었다.

곳간이 바닥나고 사람들이 굶주렸다. 신들에게 바칠 곡식마저 끊겼다. 올림포스에서도 그 사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제우스는 여러 신을 보내 데메테르를 달랬다. 데메테르는 한 가지 말만 되풀이했다. “딸을 보기 전에는 곡식이 자라지 않는다.”

석류 씨 몇 알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지하 세계로 보냈다. 페르세포네를 데려오라는 말이었다. 하데스는 그 말을 거스르지 않았다.

다만 페르세포네가 마차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하데스는 석류를 갈라 씨 몇 알을 건넸다. 페르세포네는 그것을 입에 넣었다.

지하 세계의 음식은 한 입이라도 먹으면 사람을 그곳에 매어 둔다. 그래서 페르세포네는 완전히 떠날 수 없게 되었다. 한 해를 셋으로 나누어, 그중 한 몫은 지하에 머물기로 정해졌다.

어머니와 딸은 다시 만났다. 데메테르가 딸을 안자 들판에 다시 싹이 돋았다. 하지만 해마다 한 철, 딸은 다시 땅 아래로 내려간다.

오늘, 돌아오는 것들

페르세포네가 땅 아래 있는 동안 들판은 비어 있다. 그가 올라오면 흙을 밀고 싹이 올라온다. 옛사람들은 계절을 그렇게 설명했다.

이 이야기에는 되찾음과 잃음이 함께 들어 있다. 데메테르는 딸을 되찾았지만 온전히 되찾지는 못했다. 해마다 보내고 해마다 다시 맞는다.

우리가 겪는 일도 그럴 때가 있다. 완전히 되돌릴 수 없는 일 앞에서, 사람은 돌아오는 만큼을 지켜 낸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는 것도 그런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