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배우고 때로 익히면

배움 1,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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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말을 모은 책이다. 누가 언제 엮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여러 세대의 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 많은 말 가운데 무엇을 맨 앞에 둘 것인가는 엮은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그들이 고른 것은 하늘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고 배움이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학이 1)

열 글자가 되지 않는 문장인데, 너무 많이 인용된 나머지 이제는 문장이 아니라 표어처럼 읽히기도 한다.

맨 앞자리에 놓인 것

『논어』의 편 이름은 따로 지은 것이 아니다. 각 편의 첫 두어 글자를 그대로 떼어 이름으로 삼았고, 첫 편의 이름 학이(學而)도 이 문장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제목까지 낳았다.

편 이름이 그 편의 요약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우연히 붙은 이름이 책 전체를 꽤 정확히 가리킨다.

공자는 자기를 두고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옛것을 좋아해 부지런히 찾아다닌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책은 성인의 어록이기 전에 한 학생의 기록이다.

익힌다는 글자

배울 학(學)과 익힐 습(習)은 다른 글자다. 배운다는 것이 새로 들어오는 일이라면, 익힌다는 것은 들어온 것을 되풀이해 몸에 붙이는 일이다. 두 글자를 나란히 둔 순간 배움은 한 번의 사건이기를 그친다.

천 년도 더 지난 뒤 주자가 이 책에 주석을 달면서 습(習)을 어린 새가 나는 법을 익히려고 날개를 거듭 치는 모습으로 풀었다. 한 번의 날갯짓으로 나는 법을 배우는 새는 없다는 사실이 이 글자에 이미 들어 있다.

때로 익힌다는 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데, 때(時)는 정해진 시간표라기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에 가깝다.

배움에는 끝나는 날이 없다는 뜻이다.

기쁨이 기준이 된다

이 문장에서 정말 눈에 띄는 것은 뒤쪽이다. 배우고 익히면 훌륭해진다고도 하지 않고 쓸모가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기쁘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기쁜가를 물었다. 배움의 성적표를 바깥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 안쪽에 두었다는 말이 된다.

說(열)은 기쁘다는 뜻이고 열(悅)과 같은 글자로 읽는다. 주자는 이 기쁨을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뒤에 나오는 즐거움(樂)은 밖으로 퍼지는 것이라고 갈랐다.

그래서 첫 물음의 기쁨은 남과 나누는 종류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생기고 혼자 있을 때 확인되는 것이다.

세 번의 되물음

학이편의 첫 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모양의 물음이 세 번 이어지고, 세 번 다 또한 그렇지 않은가로 끝난다.

첫 번째가 배움의 기쁨이고, 가운데는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즐거움이다. 마지막이 남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다.

혼자 익히는 기쁨에서 시작해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넓어진다. 그러고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로 내려온다.

순서가 거꾸로였다면 이 장은 다른 성격의 글이 되었을 것이다. 알아주지 않는 자리가 맨 뒤에 놓였다. 그것은 그 자리가 이 장의 결론이라는 뜻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마지막 물음은 이렇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학이 1)

온(慍)은 크게 터뜨리는 분노가 아니다. 속으로 서운해하고 답답해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이 문장은 화를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서운함이 아예 일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서운함이 일지 않으려면 애초에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자면 배움의 기쁨이 바깥의 인정과 상관없는 곳에서 나와야 한다.

첫 물음과 마지막 물음이 여기서 만난다. 안에서 생기는 기쁨을 아는 사람만 밖에서 오지 않는 인정을 견딘다는 것이다.

사기는 공자가 여러 나라를 돌며 자기를 써 줄 자리를 찾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끝내 얻지 못했다.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가라는 물음은 그런 사람이 남긴 문장이다.

군자라는 이름

마지막 물음은 군자로 끝난다. 군자는 본래 임금의 아들, 그러니까 신분이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공자는 그 말을 신분에서 떼어 내 사람의 됨됨이를 가리키는 쪽으로 옮겨 놓았다.

핏줄로 정해지던 이름이 배움과 행실로 얻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은, 이 책이 신분으로 굴러가던 사회 안에 다른 잣대를 하나 더 세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공자는 신분 자체를 없애자고 하지 않았고, 다만 군자라는 이름만은 나면서 갖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늘, 기쁘지 않은 공부

우리는 대개 배움을 기쁨으로 재지 않는다. 점수로 재고, 자격증으로 재고, 남들이 알아주는 정도로 잰다. 그 잣대들은 정확하고 편리하다.

첫 문장은 그 잣대를 부정하지 않고 다른 잣대를 하나 옆에 놓는다.

배우고 익히는 일이 지금 기쁜지 아닌지를 스스로 물어보라는 것이다. 이 물음이 불편한 이유는 답을 남에게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첫 물음도 그 자리에 둔다. 지금 내가 하는 공부는 기쁜가, 아니면 기쁘지 않다는 사실조차 오래 잊고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