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흰 피

믿음 1, 이차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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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신라에 새 생각이 들어오는 이야기다. 1부와 2부에서 하늘은 알을 내리고 보배를 주고 표를 냈다. 그 하늘은 이 땅에 오래 있던 것이었다.

이제 밖에서 온 생각이 그 자리를 두고 부딪힌다.

첫 편은 그 부딪힘이 사람 하나를 통과한 이야기다.

왕이 하려던 일

신라 스물셋째 임금 법흥왕은 절을 세워 불교를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다. 한둘이 아니라 조정 전체였다. 왕은 뜻이 있어도 혼자 밀어붙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특히 천경림에 절을 세우는 일이 문제였다. 그 숲은 오래된 신을 모시던 자리로 여겨졌다. 거기에 새 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자리를 바꾼다는 뜻이었고, 신하들은 그것을 알아보았다.

스스로 나선 사람

왕을 가까이서 모시던 젊은 관리가 있었다.

이차돈이다. 염촉이라고도 적힌다. 그가 왕에게 한 청은 뜻밖의 것이었다. 자기 목을 베어 여러 사람의 의논을 진정시키라는 것이었다.

왕은 그 청을 물리쳤다. 본래 도를 일으키려는 일인데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차돈의 대답은 짧았다. 도가 행해진다면 자기는 죽어도 유감이 없다고 했다.

기록은 두 사람이 몇 번을 주고받았는지 적지 않는다.

목을 벤 자리

왕이 신하들을 불러 절 짓는 일을 다시 물었다.

돌아온 답은 전과 같았다. 일은 한 발도 나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이차돈이 왕명을 사칭했다는 죄가 세워졌다.

목을 베라는 명이 내려졌다. 이차돈은 죽기 전에 한마디를 남겼다. 부처가 신령하다면 자기가 죽은 뒤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으리라고 했다.

그리고 목이 베였다. 솟은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젖처럼 흰 피였다. 그것이 한 길이나 솟구쳤다고 기록은 적는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해가 빛을 잃었으며 땅이 흔들리고 꽃비가 내렸다.

그의 머리는 날아가 북쪽 산꼭대기에 떨어졌다.

남은 절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그 뒤로 아무도 불법을 헐뜯지 않았다. 반대하던 말이 그친 자리에 절이 섰다. 천경림에 세운 그 절이 흥륜사다.

한 사람이 죽고 조정 전체가 조용해졌다. 이 편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그 조용함이다. 어제까지 모두가 반대하던 일이 하루 만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일이 되었다.

바뀐 것은 논거가 아니라 무게였다.

일연이 붙인 넉 줄

일연은 이 조목 끝에 넉 줄을 둘 남겼다. 뒤엣것을 우리말로 옮긴다.

의를 좇아 목숨을 가벼이 여긴 일도 이미 놀라운데 하늘에서 내린 꽃과 흰 젖은 더욱 마음을 흔든다 칼 한 번에 몸이 스러진 뒤로 절마다 울린 종소리가 서울을 흔들었다

기록만 옮겨 놓고 물러서던 사람이 여기서는 자기 말을 한다. 그가 무엇을 크게 보았는지가 이 넉 줄에 그대로 있다.

오늘, 죽어서 증명한다는 것

이 이야기는 읽는 사람을 두 갈래로 나눈다.

한쪽은 그가 골랐다고 읽는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자리에서 그가 가진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것을 걸어 막힌 일을 하루 만에 끝냈다.

다른 한쪽은 그가 밀렸다고 읽는다. 목을 벤 것은 그가 아니라 왕이다. 왕은 뜻을 이루었고 잃은 것이 없다. 스스로 나섰다는 말이 붙는 순간 명한 쪽의 책임이 옅어진다.

두 읽기는 같은 문장을 보고 갈린다. 기록에는 이차돈이 청했다는 것과 왕이 물리쳤다는 것과 결국 목이 베였다는 것이 다 들어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비어 있다.

우리 일에서도 비슷한 모양이 온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일이 한 사람이 크게 손해를 보는 방식으로 풀릴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자원했다는 말이 붙어 있으면 다들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자리에서는 값을 치른 사람과 이득을 본 쪽이 같은지 한 번 세어 볼 일이다.

흥륜사는 오래 남았고 이차돈의 이름도 남았다. 다만 그가 남긴 것은 절이 아니라 그 물음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