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일연은 무엇을 골랐나

중간 정리, 정사가 적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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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야기를 잠깐 멈춘다. 이 편에는 새로 나오는 이야기가 없다. 대신 지금까지 읽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을 본다.

물음은 하나다. 스물세 편을 우리에게 건네준 사람은 무엇을 기준으로 이것들을 골랐을까.

책 제목이 이미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유사는 빠진 일이라는 뜻이다.

무엇에서 빠졌다는 말인가. 고려에는 이미 나라가 만든 정식 역사책이 있었다. 삼국사기라 하고, 삼국유사보다 백삼십 년쯤 앞서 나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다른 책을 옆에 두고 쓰였다.

정사가 적은 것을 다시 적으려는 책이 아니라, 정사가 적지 않은 것을 모으려는 책이다. 제목이 그것을 먼저 말하고 있다.

만든 자리도 다르다.

한쪽은 나라가 사람을 모아 만들었고 다른 한쪽은 승려 하나가 절에서 모았다.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기준이 같을 수가 없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지우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 곧바로 걸리는 것이 있다.

아이가 알에서 나오고 여섯이 하늘에서 내려오며, 목을 벤 자리에서 흰 피가 솟는다. 확인할 방법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일연은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정사를 만드는 자리였다면 뺐을 만한 것들을 그는 그대로 남겼다. 첫 편의 단군이 대표적이다. 정사는 그 자리를 비워 두었고 이 책은 그것을 맨 앞에 놓았다.

지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면 이 선택이 보인다.

확인되지 않으니 지운다고 하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살았는지가 통째로 사라진다. 일어난 일만 남고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남지 않는다.

일연이 고른 쪽은 남기는 쪽이었다.

물러서는 자리와 나서는 자리

그렇다고 그가 아무거나 사실로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을 보면 그는 대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기록은 이렇게 적는다, 이러이러하다고 한다, 다르게 전하기도 한다. 이런 말이 조목마다 붙어 있다.

이름 하나도 그렇게 적는다.

묵호자를 두고는 이름이라기보다 검은 얼굴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본다고 적어 두었다. 모례를 모록이라고도 적는다는 말도 함께 있다.

판정하지 않고 갈라진 채로 두는 것이 그의 기본 자세다.

그러다 그가 앞으로 나오는 자리가 있다.

조목 끝에 붙인 넉 줄이다. 우리는 그것을 여섯 번 보았다.

세 자리만 들어 본다. 흰 피 이야기 끝에서 그는 무엇이 마음을 흔들었는지 말했다. 황룡사에서는 이 땅의 인연이 가장 깊다고 했다. 구층탑에서는 이미 불타 없어진 탑을 서 있던 때의 눈으로 노래했다.

되묻는 사람이 책이 아니라 일연인 까닭이 여기 있다.

책은 물러서 있고 사람이 넉 줄에서 나선다.

진 쪽과 이름 없는 쪽

무엇이 실렸는지를 보면 고르는 손이 더 잘 보인다.

이긴 나라의 기록만 남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다. 가야는 신라에 합쳐진 나라인데 김수로와 허황옥 이야기가 두 편에 걸쳐 실려 있다.

백제도 여러 번 나온다.

서동은 백제에서 온 젊은이이고, 신라가 가장 크게 세운 탑을 만든 사람은 백제의 장인이었다. 나라가 기우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름이 남지 않은 사람도 유난히 많다.

주몽을 따라간 벗 셋과 굴을 파서 방을 만들어 준 모례가 그렇다. 대승사를 맡은 이름 없는 비구와 만 개의 부처를 새긴 손도 그렇다. 기록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만 적고 누구였는지는 적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나라의 역사책에 자리가 없다.

정사는 나라의 일을 적는 책이라 굴방 하나와 장인 하나가 들어갈 칸이 없다. 그것들이 이 책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책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이 책이 쓰인 때

한 가지를 더 보아 두어야 한다.

일연이 이 책을 모은 것은 신라가 한창일 때가 아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겪은 뒤다.

구층탑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것을 이미 보았다.

그 탑은 몽골 군사가 들어온 겨울에 불타 없어졌는데, 일연은 없어진 탑의 높이를 자로 적었다. 아홉 층에 붙었던 이름도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적어 두었다.

없는 것을 그렇게까지 적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만하다.

기록이라기보다 붙잡아 두는 일에 가깝다. 이 책 전체가 그런 손으로 쓰였다고 보면 여러 자리가 다르게 읽힌다.

오늘, 정사가 적지 않은 것

그래서 이 책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물음이 남는다.

한쪽에서 보면 부르기 어렵다. 확인된 것과 전해 오는 말이 한 그릇에 담겨 있고, 가려내는 일을 독자가 매번 혼자 해야 한다.

다른 쪽에서 보면 이것도 역사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것 역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지우고 사건만 남기면 그 시대는 절반만 남는다.

이 시리즈는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것들은 저절로 남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고른 것이다. 고른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가 단군과 처용과 이차돈을 알고 있다.

무엇을 적고 무엇을 빼는지를 정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오늘 우리가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아 있는 사진과 남아 있지 않은 사진 사이에도 누군가의 손이 한 번 지나갔다.

그 손을 보는 것이 이 편에서 하려던 일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3부는 여기서 닫힌다. 새 생각이 들어와 절과 탑이 서고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았는지까지 왔다.

다음은 4부다. 들어온 생각을 실제로 산 사람들이 나온다. 유학길에서 돌아선 원효가 있고 끝까지 간 의상이 있다.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아무도 못 알아본 스님도 나온다.

마지막 편에서 이 책 전체를 다시 한번 보는데, 그때 묻는 것은 일연이 무엇을 골랐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았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