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두 편은 배를 타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번 편은 탄 쪽이다. 열한 해를 기다렸다가 혼자 배에 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돌아왔는지를 본다.
그리고 편 끝에서 두 사람이 한 번 더 엇갈린다. 이번에는 바닷가의 굴 앞이다.
배를 타고 가서 만난 스승
용삭 원년 신유에 의상이 당나라로 들어갔다.
돌아가는 사신의 배에 얹혀 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종남산이었고, 거기에 지엄이라는 스승이 있었다.
기록은 스승 쪽의 꿈을 먼저 적는다.
그 전날 밤 지엄은 해동에서 큰 나무 하나가 자라나는 꿈을 꾸었다. 가지와 잎이 널리 퍼져 중국을 덮었고 그 위에 봉황의 둥지가 있었다.
올라가 보니 둥지 안에 구슬 하나가 있어 빛이 멀리까지 갔다.
깨어난 지엄은 놀라서 자리를 쓸어 놓고 기다렸다. 그날 의상이 왔고, 그는 특별한 예로 그를 맞아 제자로 삼았다.
배우는 자리에서 의상은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스승은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만났다고 기뻐했다고 기록은 적는다. 그가 배운 것은 화엄이었다. 모든 것이 서로 걸려 있어서 하나를 건드리면 전부가 움직인다고 보는 쪽이다.
돌아와 절을 세우다
돌아온 사정은 배움과 상관이 없다.
당나라가 신라를 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조정에 알리기 위해 그는 급히 배를 탔다.
배우러 갔던 사람이 소식을 안고 돌아온 셈이다.
몇 해 뒤 그는 태백산에 절을 세웠다. 부석사다. 여기서 화엄을 폈고, 그 뒤로 열 곳의 절이 뒤따라 섰다.
가르친 것을 글로도 남겼다.
화엄의 뜻을 이백열 자로 눌러 그림처럼 짜 놓은 글이 있는데, 짧기 때문에 오래 읽혔다. 제자 열 사람의 이름도 기록에 적혀 있다.
여기까지가 끝까지 간 사람의 몫이다.
바다를 건너 스승을 찾았고 배워서 돌아왔고 절을 세우고 제자를 길렀다. 앞 편의 다른 한 사람이 하지 않은 일을 그가 전부 했다.
낙산의 굴
의상이 돌아온 뒤의 일이다.
관음의 진신이 동해 바닷가 어느 굴 안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리로 갔다.
곧바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굴 앞에서 몸을 깨끗이 하고 이레를 기다렸다. 이레째 새벽에 자리를 물 위에 띄우니 바다의 신들이 그를 굴 안으로 이끌었다고 기록은 적는다.
거기서 그는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받아 나왔다.
동해의 용도 구슬 하나를 바쳤다. 그러나 아직 진신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시 이레를 기다렸다.
두 번째 이레가 끝나고서야 그는 관음을 만났다. 그리고 한마디를 들었다. 앉은 자리 위 산꼭대기에 대나무 한 쌍이 솟을 것이니 그 자리에 절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나와서 보니 대나무가 솟아 있었다.
그 자리에 금당을 짓고 상을 모시니 얼굴이 둥글고 모습이 고와 하늘에서 난 듯했다. 대나무는 도로 사라졌다. 절 이름을 낙산사라 하고, 받은 두 구슬을 그 절에 두고 그는 떠났다.
이레씩 두 번. 이 편에서 가장 오래 걸린 일이 기다린 일이다.
원효가 같은 길을 갔을 때
뒤에 원효가 그곳에 예를 올리러 왔다.
남쪽 들에 이르니 흰옷 입은 여인 하나가 벼를 베고 있었다. 그는 농담처럼 그 벼를 달라고 했다.
여인이 답했다. 벼가 아직 여물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길을 가다가 다리 밑에서 한 여인이 빨래하는 것을 보았다. 목이 말라 물을 청하니 그 여인이 빨래하던 물을 떠서 건넸다.
원효는 그것을 쏟아 버리고 냇물을 새로 떠 마셨다.
그때 들 가운데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말했다. 그만두시라고 했다. 그러고는 사라졌는데, 그 소나무 아래에 신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절에 이르러 그는 관음상을 보았다.
그 자리 밑에 아까 본 신의 나머지 한 짝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그는 오는 길에 만난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았다.
사람들이 그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불렀다.
원효도 굴에 들어가 진신을 보려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들어가지 못했고 그는 그대로 떠났다.
일연이 붙인 넉 줄
일연은 의상의 조목 끝에 넉 줄을 붙였다.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덤불을 헤치고 바다를 건너 연기와 먼지를 무릅쓰니 지상사의 문이 열려 상서로운 보배를 맞았다 여러 꽃을 캐어 고국에 옮겨 심으니 종남산과 태백산이 한가지 봄이 되었다
넉 줄이 이 편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바다를 건넌 일과 지엄이 있던 절의 문이 열린 일과 배운 것을 옮겨 심은 일이다. 마지막 줄에서 중국의 산과 신라의 산이 같은 봄이 된다.
건너간 사람이 한 일을 한 줄로 줄이면 그것이다.
오늘, 다른 길로 간 두 사람
이 편은 두 장면을 나란히 놓는다.
한 사람은 굴 앞에서 이레씩 두 번을 기다린 끝에 만났다. 다른 한 사람은 오는 길에 두 번 마주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읽는 사람은 대개 뒤쪽에서 마음이 걸린다.
만나 놓고 몰랐다는 것은 못 만난 것보다 아깝게 느껴진다. 우리는 21편에서 이미 비슷한 자리를 지나왔다. 미륵을 만나 방으로 안내까지 받고도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앞의 그 자리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원효는 결국 알았다. 신 한 짝을 보고 알았고, 알고 나서 굴로 들어가려 했다. 다만 그때는 바다가 막았다.
이 편이 남기는 물음이 거기 있다.
지나고 나서 안 것도 안 것인가. 알아본 시점이 다른 것을 만난 것과 못 만난 것으로 갈라도 되는가.
기록이 두 사람을 한 조목에 넣어 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한 사람만 적었다면 이것은 관음을 만난 이야기가 된다. 둘을 나란히 적으니 알아보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우리 일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준비하고 기다려서 때를 맞추는 쪽과, 이미 지나간 자리를 뒤에 알아보는 쪽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가지를 다 한다.
다음 편부터 그 생각을 산 사람들이 더 나온다.
규율을 세운 사람도 있고,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아무도 못 알아본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