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는 「기이」 첫머리에 고조선을 놓는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이 이야기를 싣지 않았다. 일연은 책을 열면서 이 자리를 골랐다.
옛 기록에 이런 말이 있다고 그는 적는다.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에게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자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 사는 땅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려온 쪽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을 알고 아래를 살폈다. 삼위태백이라는 곳이 사람을 이롭게 할 만해 보였다. 환인은 아들에게 표지가 되는 물건 셋을 주어 내려보냈다.
환웅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내려와 그 터를 신시라 불렀다.
신단수 아래에 자리를 잡았고, 바람과 비와 구름을 맡은 신이 함께 왔다. 기록은 그가 맡은 일을 하나씩 적어 둔다. 곡식과 목숨과 병과 형벌과 선악이 그 목록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가 맡은 일치고는 뜻밖에 실무적이다. 농사와 병과 벌은 사람이 매일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굴에 들어간 둘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고 있었다. 둘은 늘 환웅에게 빌었다.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환웅은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며,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다.
둘은 그것을 받아 굴로 들어갔다. 여기서 두 짐승의 길이 갈린다. 호랑이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굴 밖으로 나갔다.
곰은 남았다.
이야기는 나간 쪽을 두 번 다시 부르지 않는다.
삼칠일
여기서 기록을 그대로 읽어야 하는 자리가 있다. 곰이 사람이 된 것은 백 일째 되는 날이 아니었다.
삼칠일, 곧 스무하루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다.
조건은 백 일이었는데 답은 그보다 먼저 왔다. 이 어긋남을 기록은 설명하지 않고 그냥 적어 둔다. 읽는 사람이 대개 그냥 지나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웅녀에게는 혼인할 상대가 없어 날마다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 그녀와 혼인했다. 아들이 태어났고 그 이름이 단군왕검이다.
조선이라는 이름
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도읍을 두고 나라를 조선이라 불렀다. 뒤에 도읍을 아사달로 옮겼다. 기록은 그가 아주 오래 나라를 다스렸다고 적는다.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사실로 볼 것인가는 오래 다투어 온 물음이다. 이 책은 그 다툼에 답하려고 쓰인 책이 아니다.
일연은 옛 기록에 이런 말이 있다고 적었을 뿐이고, 그 문장의 주어는 그가 아니다.
다만 그가 이것을 맨 앞에 놓았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가 이 책을 엮던 때는 몽골의 군대가 여러 해 이 땅을 밟던 시절이었다. 그런 때에 나라의 시작을 다시 적는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오늘, 견딘다는 말
우리는 이 이야기를 견딤의 이야기로 배운다. 곰이 견뎠고 호랑이가 못 견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곰은 조건을 다 채우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백 일을 다 세우라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굴에 남아 있던 쪽에게 답이 먼저 왔다는 것이다. 남아 있는 일과 끝까지 세는 일은 같지 않다.
호랑이 쪽도 한 번 더 볼 자리가 있다. 이야기는 나간 쪽을 나무라지 않고, 그저 다시 부르지 않을 뿐이다.
남지 않은 사람의 몫이 이야기에서 사라지는 방식이 이렇다.
다음 편에서는 알에서 나온 아이가 나온다. 이번에는 하늘이 내려오지 않고 사람이 쫓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