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세 번 찾아간 초가

와룡 2, 눈길과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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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가 떠난 뒤 유비는 예물을 마련해 융중으로 공명을 찾아가려 한다. 그때 문밖에 높은 관을 쓰고 넓은 띠를 맨 선생 한 사람이 찾아왔다는 기별이 온다. 공명이 아닐까 하여 옷을 여미고 나가 보니 수경 선생 사마휘다.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뒤채로 모신다.

수경이 말한다. 서원직이 여기 있다기에 한번 만나러 왔소. 유비는 조조가 원직의 어머니를 가두었고, 어머니가 편지를 보내 허창으로 불러 갔다고 답한다. 수경이 말한다. 조조의 꾀에 걸렸구려. 서씨 어머니가 몹시 어질다고 늘 들었으니, 갇혔다 해도 아들을 부르는 편지를 보낼 사람이 아니오. 그 편지는 반드시 거짓이오.

원직이 가지 않았으면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을 것이오. 지금 갔으니 어머니는 반드시 죽을 것이오. 유비가 놀라 까닭을 묻자 수경은 서씨 어머니의 높은 뜻으로는 반드시 아들을 보기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한다.

주인은 얻어도 때는

유비가 묻는다. 원직이 떠나며 남양의 제갈량을 천거했는데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수경이 웃는다. 원직은 가려면 혼자 갈 것이지, 어찌 그 사람까지 끌어내어 피를 토하게 하는가.

수경은 공명이 최주평 · 석광원 · 맹공위 · 서원직과 가까운 벗이라고 한다. 네 사람은 글을 깊이 파고드는데 공명만은 큰 줄기를 본다. 그는 무릎을 안고 길게 읊조리다가 네 사람에게 그대들은 벼슬하면 자사나 태수까지는 오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 공명의 뜻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곁에 있던 관우가 말한다. 관중과 악의는 춘추전국의 이름난 사람인데 공명이 자기를 그 둘에 견주는 것은 지나치지 않습니까? 수경이 웃는다. 내가 보기에 그 둘에 견줄 것이 아니오. 주나라를 팔백 년 일으킨 강자아, 한나라를 사백 년 번성하게 한 장자방에 견줄 만하오. 모두 놀란다.

수경은 섬돌을 내려가 작별하고, 유비가 붙잡아도 머물지 않는다. 문을 나서던 수경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는다. 와룡이 주인은 얻었으나 때는 얻지 못했으니 아깝구나.

수경은 홀가분하게 떠난다. 유비가 탄식한다. 참으로 숨어 사는 어진 선비로구나.

그 많은 이름

이튿날 유비는 관우 · 장비와 종자들을 데리고 융중으로 간다. 멀리 산자락에서 몇 사람이 호미를 메고 밭을 갈며 노래를 부른다. 푸른 하늘은 둥근 덮개 같고 땅은 바둑판 같은데, 세상 사람들은 흑과 백으로 갈려 영화와 욕됨을 다툰다는 노래다.

유비가 누가 지은 노래냐고 묻자 농부는 와룡 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산 남쪽에 길게 이어진 언덕이 와룡강이고, 언덕 앞 성긴 숲속 초가가 제갈 선생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유비는 초가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손수 사립문을 두드린다. 아이 하나가 나와 누구냐고 묻는다. 유비가 말한다. 한나라 좌장군 의성정후 예주목 황숙 유비가 선생을 뵈러 왔다.

아이가 말한다. 저는 그렇게 많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유비가 그냥 유비가 왔다고만 전하라고 하자 아이가 답한다. 선생님은 오늘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느냐고 묻자 아이는 발길이 일정하지 않아 모른다고 한다. 언제 돌아오시느냐고 묻자 그것도 일정하지 않아 사나흘일 수도 있고 열흘 남짓일 수도 있다고 한다.

유비는 몹시 서운해한다. 장비는 못 만났으니 그냥 돌아가자고 하고, 유비는 잠시 기다려 보자고 한다. 관우가 일단 돌아갔다가 사람을 보내 알아보는 것이 낫다고 하자, 유비는 그 말을 따른다. 그는 아이에게 선생께서 돌아오시면 유비가 찾아왔다고 꼭 전해 달라고 이른다.

돌고 도는 세상

말을 타고 몇 리를 가다 유비는 말을 세우고 융중을 돌아본다. 산은 높지 않아도 빼어나고 물은 깊지 않아도 맑다.

그때 생김새가 늠름한 한 사람이 머리에 소요건을 쓰고 검은 베 도포를 입고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채 산길로 온다.

유비는 이 사람이 와룡 선생이 틀림없다며 급히 말에서 내려 절한다. 그 사람이 말한다. 나는 공명이 아니라 공명의 벗인 박릉의 최주평이오. 두 사람은 숲속 바위에 마주 앉고, 관우와 장비는 곁에 선다.

최주평이 묻는다. 장군은 무엇 때문에 공명을 만나려 하오? 유비가 답한다.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러우니 공명을 만나 나라를 편안히 할 계책을 구하려 합니다.

최주평이 웃는다. 공이 어지러움을 평정하려는 것은 어진 마음이지만, 예로부터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늘 바뀌어 왔소. 고조가 진나라를 쳐서 어지러움이 다스림으로 들어갔고, 이백 년 태평 뒤에 왕망이 일어나 다시 어지러워졌소. 광무제가 다시 일으킨 지 또 이백 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다스림에서 어지러움으로 들어가는 때라 갑자기 평정할 수 없소.

장군이 공명에게 하늘과 땅을 돌려놓게 하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마음만 헛되이 쓸 것이오. 하늘을 따르는 자는 편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수고롭다는 말을 듣지 못했소?

유비가 답한다.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높은 식견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 황실의 핏줄이니 마땅히 한실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어찌 그것을 수와 명에 맡기겠습니까.

최주평은 산야의 사람이라 천하의 일을 논할 만하지 못한데 물으시기에 함부로 말했다고 한다. 유비가 함께 고을로 가자고 청하자 그는 벼슬과 이름에 뜻을 접은 지 오래라며 길게 읍하고 떠난다.

장비가 투덜댄다. 공명은 못 만나고 웬 썩은 선비를 만나 한참이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었소. 유비가 답한다. 이것도 숨어 사는 사람의 말이다.

눈길

신야로 돌아와 며칠이 지나자 와룡 선생이 돌아왔다는 기별이 온다. 유비가 말을 준비하라고 하자 장비가 말한다. 시골 사람 하나를 어찌 형님이 몸소 가십니까. 사람을 보내 불러오면 됩니다.

유비가 꾸짖는다. 맹자께서 하신 말을 듣지 못했느냐. 어진 이를 만나려 하면서 그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닫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공명은 이 시대의 큰 어진 이인데 어찌 불러올 수 있겠느냐.

때는 한겨울이라 몹시 춥고 붉은 구름이 빽빽하다. 몇 리를 못 가 북풍이 매섭게 불고 눈이 펄펄 내린다. 산은 옥을 쌓은 듯하고 숲은 은으로 덮인 듯하다.

장비가 말한다. 하늘이 차고 땅이 얼어 군사도 쓰지 않는 때에 쓸모없는 사람을 보러 멀리 간단 말이오? 신야로 돌아가 눈바람을 피하는 것이 낫겠소. 유비가 답한다. 나는 바로 공명에게 내 정성을 알리려는 것이다. 아우들이 추운 것이 싫으면 먼저 돌아가거라.

장비가 말한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은데 추운 것을 두려워하겠소. 다만 형님이 헛수고만 하실까 걱정될 뿐이오. 유비는 더 말하지 말고 따라오라고 한다.

초가 가까이 이르렀을 때 길가 술집에서 두 사람이 번갈아 노래를 부른다. 하나는 때를 만나지 못한 장사의 노래이고, 하나는 시골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며 제 몸 하나 편히 지키겠다는 노래다. 두 사람이 노래를 마치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

유비는 와룡이 이 안에 있을 것이라며 말에서 내려 술집에 들어간다. 두 사람이 탁자에 기대어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유비가 읍하며 두 분 가운데 누가 와룡 선생이냐고 묻는다.

수염이 긴 사람이 말한다. 우리는 와룡이 아니라 모두 와룡의 벗이오. 나는 영천의 석광원이고 이분은 여남의 맹공위요. 유비는 말을 준비해 두었으니 함께 와룡의 집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한다. 석광원은 산야의 게으른 무리라 나라 다스리는 일은 모른다며 사양한다. 명공께서는 말에 오르셔서 와룡을 찾으시오.

두 번째 빈집

유비는 두 사람과 작별하고 와룡강으로 간다. 초가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선생이 오늘은 집에 계시느냐고 묻자, 아이가 지금 초당에서 글을 읽고 계신다고 한다.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아이를 따라 들어간다.

가운데 문에 이르자 문 위에 크게 쓴 두 줄 글이 보인다. 욕심 없이 담백해야 뜻을 밝힐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해야 멀리 이를 수 있다. 유비가 글을 보고 있는데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유비가 문 곁에 서서 엿보니 초당 위에서 한 젊은이가 화로를 끼고 무릎을 안은 채 노래한다. 봉황은 천 길 높이 날아도 오동이 아니면 깃들지 않고, 선비는 한구석에 엎드려 있어도 주인이 아니면 기대지 않는다는 노래다.

유비는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초당에 올라 예를 갖춘다. 제가 선생을 오래 우러렀으나 뵐 인연이 없었습니다. 전에 서원직의 천거를 받고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했고, 오늘 눈바람을 무릅쓰고 와서 뵙게 되니 참으로 큰 다행입니다.

젊은이가 황급히 답례한다. 장군은 유예주가 아니십니까? 제 형님을 만나러 오셨지요? 유비가 놀란다. 선생도 와룡이 아니십니까?

젊은이가 말한다. 저는 와룡의 아우 제갈균입니다. 저희는 형제가 셋인데 맏형 제갈근은 강동 손중모에게 있고, 공명은 둘째 형입니다. 형님은 어제 최주평과 약속하고 놀러 나갔습니다. 작은 배를 타고 강과 호수를 다니기도 하고, 산에서 스님과 도사를 찾기도 하고, 마을에서 벗을 찾기도 합니다. 어디로 오가는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유비가 탄식한다. 내가 이토록 인연이 엷어 두 번이나 큰 어진 이를 만나지 못하는구나.

언 붓으로 쓴 편지

장비는 선생이 없으니 말에 오르시라고 재촉한다. 유비가 말한다. 여기까지 와서 어찌 한 마디도 없이 돌아가겠느냐. 그는 제갈균에게 형님이 병법에 밝아 날마다 병서를 본다는데 들을 수 있겠느냐고 묻고, 제갈균은 모른다고 한다.

장비가 그런 것은 물어 무엇 하느냐, 눈바람이 거세니 일찍 돌아가자고 하자 유비가 꾸짖어 그치게 한다. 제갈균이 형님이 안 계시니 수레와 말을 오래 붙잡아 둘 수 없다며 다른 날 답례하러 가겠다고 하자, 유비가 말한다. 어찌 선생께 수고를 바라겠소. 며칠 뒤 내가 다시 오겠소. 종이와 붓을 빌려 형님께 글을 남기고 싶소.

유비는 언 붓에 입김을 불어 녹이고 종이를 펴서 쓴다. 저는 오래 높은 이름을 우러러 두 번 찾아뵈었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니 서운함을 어디에 견주겠습니까. 조정이 무너지고 기강이 허물어져 영웅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악한 무리가 임금을 속이니 간과 쓸개가 찢어지는 듯합니다.

바로잡을 정성은 있으나 다스릴 계책이 없습니다. 선생께서 여망의 큰 재주와 자방의 큰 꾀를 펼쳐 주시기를 우러러 바랍니다. 다음에는 몸을 깨끗이 하고 다시 와서 뵙고 마음을 다 털어놓겠습니다.

노새를 탄 노인

유비는 편지를 제갈균에게 맡기고 절하고 나온다. 말에 오르려는데 아이가 울타리 밖에서 손짓하며 외친다. 노선생님이 오십니다.

작은 다리 서쪽에서 한 사람이 털모자를 쓰고 여우 갖옷을 입고 노새를 타고 눈을 밟으며 온다. 뒤에는 푸른 옷 입은 아이가 술 호리병을 들고 따른다. 그는 다리를 건너며 시 한 수를 읊는다. 밤새 북풍이 차서 만 리에 붉은 구름이 두껍고, 하늘 가득 눈이 어지럽게 날리니 강산이 모두 옛 모습을 잃었다는 시다.

유비는 이번에야말로 와룡이라며 안장에서 굴러 내려와 절한다. 선생께서 추위를 무릅쓰고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유비가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 사람이 황급히 노새에서 내려 답례하는데 제갈균이 뒤에서 말한다. 이분은 와룡 형님이 아니라 형님의 장인 황승언 어르신입니다.

유비가 방금 읊으신 시가 참으로 높고 묘하다고 하자, 황승언은 사위의 집에서 본 「양보음」의 한 편이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다 울타리의 매화를 보고 생각이 나서 읊었다는 것이다. 유비가 사위를 보셨느냐고 묻자 황승언이 답한다. 나도 지금 그 사람을 보러 오는 길이오.

유비는 작별하고 말에 올라 돌아간다. 눈바람이 더 거세지고, 유비는 와룡강을 돌아보며 몹시 서운해한다.

형제의 반대

신야로 돌아와 해가 바뀌어 새봄이 온다. 유비는 점을 쳐서 좋은 날을 고르고, 사흘 동안 몸을 삼가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와룡강으로 가려 한다. 관우와 장비가 그 말을 듣고 언짢아 함께 들어와 말린다.

관우가 말한다. 형님이 두 번이나 몸소 찾아가셨으니 예가 지나칩니다. 생각건대 제갈량은 헛된 이름만 있고 실제 학문이 없어서 피하며 감히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형님은 어찌 그 사람에게 이토록 홀리셨습니까?

유비가 답한다. 그렇지 않다. 옛날 제나라 환공은 동곽의 시골 사람 하나를 만나려고 다섯 번 걸음을 하고서야 한 번 만났다. 하물며 나는 큰 어진 이를 만나려는 것이다.

장비가 말한다. 형님이 틀렸소. 그 시골 사람이 무슨 큰 어진 이란 말이오. 이번에는 형님이 가실 것 없소. 그가 안 오면 내가 삼 밧줄 한 가닥으로 묶어 오겠소.

유비가 꾸짖는다. 너는 주나라 문왕이 강자아를 찾아간 일도 듣지 못했느냐. 문왕도 어진 이를 그렇게 공경했는데 너는 어찌 이토록 무례하냐. 이번에는 너는 가지 말고 나와 운장만 가겠다. 장비가 두 형님이 다 가시는데 아우가 어찌 뒤에 남겠느냐고 하자 유비가 말한다. 함께 가려거든 예를 잃지 마라.

섬돌 아래

세 사람은 종자를 이끌고 융중으로 간다.

초가 반 리 밖에서 유비는 말에서 내려 걸어간다. 마침 제갈균을 만나 형님이 집에 계시냐고 묻자, 제갈균은 어제저녁에 돌아왔으니 오늘은 만나실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는 훌쩍 제 갈 길을 간다.

유비는 이번에는 다행히 선생을 뵙겠다고 기뻐한다. 장비가 말한다. 저 사람은 무례하구려.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어도 될 텐데 어찌 혼자 가 버리오. 유비가 답한다. 저마다 할 일이 있는데 어찌 억지로 시키겠느냐.

초가 앞에서 문을 두드리자 아이가 나온다. 선생님이 오늘 집에 계시기는 하지만 지금 초당에서 낮잠을 주무시고 아직 깨지 않으셨습니다. 유비는 그러면 알리지 말라 하고, 관우와 장비에게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한다.

유비가 천천히 들어가 보니 선생이 초당의 자리 위에 반듯이 누워 있다. 유비는 두 손을 모으고 섬돌 아래 선다.

한참이 지나도 선생은 깨지 않는다. 밖에서 오래 서 있던 관우와 장비가 기척이 없어 들어와 보니, 유비가 아직도 그대로 서 있다.

장비가 크게 성을 낸다. 이 선생은 어찌 이리 거만하오. 우리 형님이 섬돌 아래 서 계신 것을 보고도 누워서 자는 척 일어나지 않는구려. 내가 집 뒤에 불을 한 번 질러 보겠소.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봅시다.

관우가 거듭 말려 붙든다. 유비는 두 사람을 다시 문밖으로 내보낸다.

초당을 보니 선생이 몸을 뒤척여 일어나려다 다시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잠이 든다. 아이가 알리려 하자 유비가 놀라게 하지 말라고 한다. 다시 한 시진을 더 서 있자 공명이 깨어나 시를 읊는다.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는가, 평생을 나는 스스로 안다. 초당에 봄잠이 넉넉하니 창밖의 해는 더디기만 하다.

속된 손님

공명은 읊기를 마치고 돌아누워 아이에게 묻는다. 속된 손님이 왔느냐? 아이가 유황숙께서 오셔서 오래 서서 기다리셨다고 한다. 공명은 일어나며 어찌 일찍 알리지 않았느냐, 옷을 갈아입을 동안 기다려 달라고 하고 뒤채로 들어간다. 한참 뒤에야 옷과 관을 갖추고 나와 맞는다.

유비가 보니 공명은 키가 여덟 자에 얼굴이 관에 단 옥 같다. 머리에 윤건을 쓰고 학창의를 걸쳐 신선 같은 기품이 있다.

유비가 절한다. 한 황실의 끝자락 핏줄이고 탁군의 어리석은 사람이 선생의 큰 이름을 우레처럼 들었습니다. 전에 두 번 찾아뵙고 못 만나 책상 위에 이름을 적어 두었는데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공명이 답한다. 남양의 시골 사람이 게으름이 몸에 배어 여러 번 장군께서 걸음하시게 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두 사람은 손님과 주인의 자리를 나누어 앉는다. 차를 마시고 공명이 말한다. 어제 편지를 보고 장군께서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알았습니다. 다만 제가 나이 어리고 재주가 엷어 물으시는 뜻을 그르칠까 걱정입니다.

유비가 말한다. 사마덕조와 서원직의 말이 어찌 헛말이겠습니까. 선생께서 저를 버리지 마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공명이 말한다. 덕조와 원직은 세상의 높은 선비이고 저는 밭 가는 사람일 뿐인데 어찌 천하의 일을 논하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어찌 아름다운 옥을 두고 거친 돌을 구하십니까.

유비가 말한다. 대장부가 세상을 다스릴 기이한 재주를 품고 어찌 숲과 샘 아래서 헛되이 늙겠습니까. 선생께서 천하의 백성을 생각하시어 이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쳐 주십시오. 공명이 웃는다.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유비는 사람들을 물리고 자리를 당겨 앉아 말한다. 한 황실이 기울고 간신이 천명을 훔쳤습니다. 저는 힘을 헤아리지 않고 천하에 대의를 펴려 했으나 지혜와 꾀가 짧아 아직 이룬 것이 없습니다.

셋으로 나눈 천하

공명이 말한다. 동탁이 반역한 뒤로 천하의 호걸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조조는 세력이 원소에 미치지 못했는데도 끝내 원소를 이겼습니다. 하늘의 때만이 아니라 사람의 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조는 백만 군사를 거느리고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그와는 칼끝을 다툴 수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을 차지한 지 이미 삼 대가 되었습니다. 땅이 험하고 백성이 따르니 도움을 받을 상대이지 차지할 상대가 아닙니다.

형주는 북쪽으로 한수와 면수에 기대고 남쪽으로 남해까지 이로움이 닿으며, 동쪽으로 오와 이어지고 서쪽으로 파촉과 통합니다. 군사를 쓸 땅인데 그 주인이 지키지 못하니, 하늘이 장군께 주려는 것입니다. 익주는 험한 요새에 기름진 들이 천 리이고, 고조께서 그 땅에 기대어 제업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유장은 어둡고 약해 백성이 넉넉해도 돌볼 줄 모르니, 지혜롭고 재능 있는 선비들이 밝은 임금을 바랍니다.

장군께서는 형주와 익주를 차지해 험한 곳을 지키고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을 달래십시오. 밖으로는 손권과 손잡고 안으로는 다스림을 닦으십시오. 천하에 변고가 생기면 한 장수에게 형주의 군사를 맡겨 완과 낙양으로 향하게 하십시오. 장군께서는 몸소 익주의 무리를 이끌고 진천으로 나가시면, 백성이 밥과 국을 들고 장군을 맞지 않겠습니까.

말을 마친 공명은 아이에게 족자 하나를 가져와 가운데 벽에 걸게 하고 가리킨다. 이것이 서천 오십사 주의 지도입니다.

北讓曹操占天時 南讓孫權占地利 將軍可占人和

북양조조점천시 남양손권점지리 장군가점인화

북쪽은 조조에게 맡겨 하늘의 때를 차지하게 하고, 남쪽은 손권에게 맡겨 땅의 이로움을 차지하게 하십시오. 장군께서는 사람의 화합을 차지하실 수 있습니다. (38회)

먼저 형주를 차지해 집으로 삼고, 뒤에 서천을 차지해 기업을 세워 솥발처럼 셋이 서는 형세를 이루십시오. 그런 뒤에 중원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차마 빼앗지 못할 땅

유비는 자리에서 물러나 두 손을 모으고 감사한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막혔던 것이 한꺼번에 뚫려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유장은 모두 한 황실의 종친인데 제가 어찌 차마 빼앗겠습니까?

공명이 말한다. 제가 밤에 하늘을 보니 유표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유장은 큰일을 세울 주인이 아니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장군께 돌아갈 것입니다. 유비는 머리를 조아려 감사한다.

유비가 공명에게 절하며 청한다. 제가 이름은 낮고 덕은 엷지만, 선생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산을 나와 도와주시면 밝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공명이 말한다. 저는 오래 밭 갈고 김매는 것을 즐겨 세상에 나가기가 게으르니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유비가 운다. 선생께서 나오지 않으시면 천하의 백성은 어찌합니까. 말을 마치자 눈물이 도포 소매를 적시고 옷깃이 다 젖는다.

공명은 그의 뜻이 매우 정성스러운 것을 보고 말한다. 장군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개와 말의 수고를 다하겠습니다.

오늘, 세 번째 걸음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관우와 장비를 불러 들여 절하게 하고 금과 비단을 바친다. 공명이 굳이 사양하자 유비는 어진 이를 모시는 예물이 아니라 제 작은 마음일 뿐이라고 한다. 공명은 그제야 받는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초가에서 함께 묵는다.

이튿날 제갈균이 돌아오자 공명이 당부한다. 나는 유황숙이 세 번 찾아와 주신 은혜를 입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너는 여기서 몸소 밭을 갈고 논밭을 묵히지 마라. 내가 공을 이루는 날 곧 돌아와 숨어 살겠다.

첫 번째 걸음에서 유비는 아이에게 이름을 줄여 말했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따르라는 말을 들었다. 두 번째 걸음에서는 눈길을 뚫고 가서 언 붓으로 편지를 남겼다. 세 번째 걸음에서는 반 리 밖에서 말을 내려 섬돌 아래 서서 기다렸고, 깨어난 공명이 천하를 셋으로 나눈 그림을 걸었다.

누군가 나를 여러 번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보고 마음을 정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