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는 공명을 죽이고 싶었다. 그는 공명에게 조조의 군량이 쌓인 취철산을 쳐 달라고 했고, 노숙에게는 조조의 손을 빌려 공명을 죽이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공명은 아무렇지 않게 채비를 하며 노숙에게 말했다. 강동 아이들이 길목 지키는 데는 자경이고 물에서 싸우는 데는 주랑이라 노래한다니, 공근은 물에서만 싸울 줄 아는 모양이오.
주유는 그 말에 노해 자기가 가겠다고 했다. 공명은 조조가 평생 남의 군량 길을 끊어 온 사람이라 군량은 단단히 지킬 것이고, 공근이 가면 사로잡힐 것이라고 노숙에게 일렀다. 주유는 이 사람의 식견이 나보다 열 배 낫다며 발을 굴렀다. 얼마 뒤 주유는 유비를 진영으로 불러 장막 안에 도부수 쉰 명을 숨겼다. 그러나 유비 뒤에 칼자루를 잡고 선 관우를 보고는 손을 쓰지 못했다.
그 뒤 주유는 어려서 함께 공부한 장간이 조조에게 자청해 항복을 권하러 오자 그를 속였다. 술에 취한 척 한 침상에 누워, 채모와 장윤이 강동과 몰래 통한다는 거짓 편지를 훔쳐 가게 한 것이다. 조조는 그 편지를 보고 두 수군 도독을 베었고, 목이 바쳐진 뒤에야 꾀에 걸린 줄 알았다. 주유는 다른 장수들은 이 꾀를 모를 것이나 제갈량만은 알아챌 것이라며 노숙을 보내 떠보게 한다.
미리 하는 축하
노숙이 작은 배로 공명을 찾아가 요즘 군무가 바빠 가르침을 듣지 못했다고 인사한다. 공명이 말한다. 저도 아직 도독께 축하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노숙이 무슨 축하냐고 묻자 공명이 답한다. 공근이 선생을 보내 제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떠보게 한 바로 그 일을 축하해야지요.
노숙은 얼굴빛이 변해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 공명이 말한다. 그 꾀는 장간이나 속일 수 있을 뿐입니다. 조조는 잠깐 속았어도 곧 깨달을 것인데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채모와 장윤이 죽었으니 강동의 걱정이 없어졌는데 어찌 축하하지 않겠습니까. 조조가 대신 모개와 우금을 수군 도독으로 세웠다니 그 둘 손에서 수군의 목숨이 끝날 것입니다.
노숙이 얼버무리다 일어서자 공명이 당부한다. 자경께서는 공근 앞에서 제가 이 일을 먼저 알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공근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고 또 저를 해칠 일을 찾을까 걱정입니다.
노숙은 그러겠다고 하고 돌아갔지만, 주유를 보자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주유가 크게 놀란다. 이 사람은 결코 살려 둘 수 없다. 반드시 베겠다. 노숙이 공명을 죽이면 조조의 웃음을 살 것이라고 말리자 주유가 말한다. 나에게 공정한 방법이 있소. 그가 죽으면서도 원망하지 못하게 하겠소.
열흘과 사흘
이튿날 주유는 장수들을 모아 놓고 공명을 청한다. 곧 조조의 군사와 싸울 텐데 물 위에서 싸울 때는 어떤 병기를 앞세워야 합니까? 공명이 답한다. 큰 강 위에서는 활과 화살이 먼저입니다.
주유가 말한다. 선생의 말씀이 내 뜻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중에 화살이 모자라니, 선생께서 화살 십만 개를 만드는 일을 맡아 주십시오. 공적인 일이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공명이 언제까지 쓰실 것이냐고 묻자 주유는 열흘 안에 되겠느냐고 한다. 공명이 말한다. 조조의 군사가 곧 이를 텐데 열흘을 기다리면 큰일을 그르칩니다. 주유가 그러면 며칠이면 되겠느냐고 묻자 공명이 답한다. 사흘이면 화살 십만 개를 바치겠습니다.
주유가 말한다. 군중에는 장난말이 없소. 공명이 답한다. 어찌 감히 도독께 장난을 하겠습니까. 군령장을 쓰겠습니다. 사흘 안에 마치지 못하면 무거운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주유는 크게 기뻐하며 군정사를 불러 그 자리에서 문서를 받고 술을 내어 대접한다. 공명은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내일부터 만들겠다며, 사흘째 되는 날 군사 오백을 강가로 보내 화살을 나르게 하라고 이른다.
공명이 돌아가자 노숙이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주유가 말한다. 그가 스스로 죽으러 온 것이지 내가 몰아붙인 것이 아니오. 여러 사람 앞에서 분명히 문서를 받았으니 양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도 날아가지 못할 것이오. 나는 장인들에게 일부러 늦추게 하고 쓸 재료도 갖추어 주지 않겠소. 그러면 반드시 기한을 넘길 것이고, 그때 죄를 물으면 무슨 말을 하겠소.
스무 척의 배
노숙이 살피러 가자 공명이 말한다. 제가 자경께 공근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경께서 숨겨 주지 않으셔서 오늘 또 일이 생겼습니다. 사흘 안에 어찌 화살 십만 개를 만들겠습니까. 자경께서 저를 구해 주셔야 합니다.
노숙이 말한다. 공이 스스로 화를 불렀는데 내가 어찌 구하겠소. 공명이 말한다. 자경께서 배 스무 척만 빌려주십시오. 배마다 군사 서른 명을 태우고, 푸른 천으로 휘장을 두르고, 짚단 천여 개를 묶어 양쪽에 늘어세워 주십시오. 저에게 쓸 데가 있습니다. 사흘째에는 반드시 화살 십만 개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결코 공근이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알면 제 꾀가 깨집니다.
노숙은 그러겠다고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돌아가 주유에게 이번에는 배를 빌려준 일은 말하지 않는다. 공명이 화살대로 쓸 대나무나 깃털이나 아교나 옻을 전혀 쓰지 않는데도 다 방법이 있는 것 같더라고만 한다. 주유는 크게 의심한다. 사흘 뒤 그가 나에게 무엇이라 답하는지 보겠소.
노숙은 몰래 날랜 배 스무 척을 내어 배마다 군사 서른여 명을 태우고 휘장과 짚단을 모두 갖추어 둔다. 그런데 첫날 공명은 아무 움직임이 없다. 둘째 날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짙은 안개
사흘째 사경 무렵, 공명이 노숙을 몰래 배로 청한다. 노숙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공명은 함께 화살을 가지러 가자고 한다. 어디로 가지러 가느냐고 묻자 공명은 묻지 말고 가 보면 안다고 한다.
공명은 배 스무 척을 긴 밧줄로 서로 잇게 하고 곧장 북쪽 기슭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날 밤 짙은 안개가 하늘을 덮었는데, 장강 위는 안개가 더욱 짙어 마주 보아도 서로 보이지 않는다. 공명은 배를 재촉해 나아간다.
오경 무렵 배가 조조의 수채에 가까워진다. 공명은 배들을 머리는 서쪽, 꼬리는 동쪽으로 한 줄로 늘어세우고 배 위에서 북을 치며 함성을 지르게 한다.
노숙이 놀란다. 조조의 군사가 한꺼번에 나오면 어찌하오? 공명이 웃는다. 조조는 짙은 안개 속에서는 반드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술이나 마시며 즐기다가 안개가 걷히면 돌아갑시다.
쏟아지는 화살
조조의 진영에서는 북소리와 함성을 듣고 모개와 우금이 급히 조조에게 알린다. 조조가 명을 내린다. 짙은 안개가 강을 덮었는데 적이 갑자기 왔으니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결코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수군의 궁수들에게 마구 쏘게 하라.
조조는 육지 진영의 장료와 서황에게도 궁수 삼천씩을 데리고 서둘러 강가로 가서 쏘게 한다. 명이 닿기도 전에 모개와 우금은 남쪽 군사가 수채로 쳐들어올까 두려워 이미 궁수들에게 활을 쏘게 했다.
곧 육지 진영의 궁수들까지 이르러 만여 명이 모두 강을 향해 쏜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공명은 배를 돌려 머리를 동쪽, 꼬리를 서쪽으로 하여 수채 가까이 대고 화살을 받게 하며 계속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게 한다. 해가 높이 뜨고 안개가 걷히자 공명은 배를 거두어 서둘러 돌아오게 한다. 배 스무 척 양쪽의 짚단에 화살이 빽빽이 꽂혔다.
공명은 배마다 군사들에게 한목소리로 외치게 한다. 승상, 화살 고맙소. 조조에게 알렸을 때는 배가 가볍고 물살이 빨라 이미 이십여 리를 내려간 뒤라 쫓을 수 없다. 조조는 몹시 뉘우친다.
하늘에 달린 목숨
돌아오는 배에서 공명이 노숙에게 말한다. 배마다 화살이 오륙천 개는 되니 강동의 힘을 조금도 들이지 않고 십만 개 넘게 얻었습니다. 내일 이것으로 조조의 군사를 쏘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노숙이 묻는다. 선생은 참으로 신인이오. 오늘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낄 줄 어찌 아셨소?
공명이 답한다. 장수가 되어 천문에 통하지 않고 지리를 알지 못하고 기문을 모르고 음양에 밝지 못하고 진도를 보지 못하고 병세를 모르면 보잘것없는 재주입니다. 저는 사흘 전에 오늘 짙은 안개가 낄 것을 헤아렸기에 감히 사흘이라는 기한을 맡았습니다. 공근은 열흘을 주면서 장인과 재료를 대 주지 않았으니, 이 허물을 핑계로 분명히 저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我命繫於天 公瑾焉能害我哉
아명계어천 공근언능해아재
내 목숨은 하늘에 매여 있으니 공근이 어찌 나를 해칠 수 있겠소. (46회)
노숙은 절하며 감복한다.
손바닥의 글자
배가 기슭에 닿자 주유가 보낸 군사 오백이 이미 강가에서 화살을 나르려고 기다리고 있다. 배에서 거둔 화살이 십만 개가 넘어 모두 중군의 장막으로 옮겨 바친다. 노숙이 들어가 공명이 화살을 얻은 일을 낱낱이 아뢰자 주유가 크게 놀라 탄식한다. 공명의 신기한 꾀와 묘한 셈은 내가 따를 수 없구나.
곧 공명이 진영에 들어오자 주유는 장막을 내려와 맞으며 칭찬한다. 선생의 신묘한 셈에 감복합니다. 공명이 답한다. 하찮은 잔꾀일 뿐인데 어찌 기이하다 하겠습니까.
주유는 공명을 장막 안으로 청해 함께 술을 마신다. 어제 우리 주공께서 사람을 보내 진군을 재촉하셨는데 저에게 아직 기이한 계책이 없으니 선생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공명은 자기는 보잘것없는 재주라 묘한 계책이 없다고 한다.
주유가 말한다. 어제 조조의 수채를 보니 몹시 엄정하고 법도가 있어 함부로 칠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 꾀를 생각했는데 될지 모르겠으니 선생께서 판단해 주십시오. 공명이 말한다. 도독께서는 아직 말씀하지 마십시오. 각자 손바닥에 써서 같은지 다른지 봅시다.
오늘, 사흘이라는 기한
주유는 크게 기뻐하며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해 먼저 몰래 쓰고 붓을 공명에게 건넨다. 공명도 몰래 쓴다. 두 사람은 자리를 가까이 옮겨 손바닥을 펴 서로 본다. 주유의 손바닥에도 불 화(火) 한 글자가 있고, 공명의 손바닥에도 불 화 한 글자가 있다. 두 사람은 함께 크게 웃는다.
주유가 말한다. 우리 둘의 생각이 같으니 더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결코 새어 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공명이 답한다. 두 집안의 공적인 일인데 어찌 새어 나가게 하겠습니까. 조조는 이 꾀를 두 번이나 겪었지만 반드시 대비하지 않을 것이니 도독께서는 그대로 하십시오. 술자리가 끝나고 흩어진다. 장수들 가운데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없다.
주유는 열흘을 주며 공명이 기한을 넘기기를 바랐고, 공명은 사흘이면 된다며 군령장을 썼다. 노숙은 첫 부탁은 지키지 못했고 두 번째 부탁은 지켰다. 첫날과 둘째 날 공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사흘째 새벽 안개 속에서 조조의 화살을 받아 왔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여길 때, 남몰래 기다리며 준비한 것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