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니가 하늘과 씨름했다면, 이번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침묵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름 하나를 혼동한 값
한 사람이 잔치를 열며 하인에게 일렀다. 내 친구 카미차를 불러오라.
하인은 이름이 비슷한 다른 사람, 그의 원수 바르 카미차를 불러왔다.
쫓겨나기까지
주인은 잔치 자리에서 원수를 발견하고 말했다. 너는 내 원수다, 여기서 나가라.
바르 카미차가 매달렸다. 이왕 왔으니 내 음식값은 내가 내겠다. 주인은 거절했다. 그렇다면 잔치 절반 비용을 내겠다. 거절했다. 그렇다면 잔치 전체 비용을 내가 대겠다. 그래도 거절당했고, 그는 결국 끌려 나갔다.
침묵한 사람들
바르 카미차의 분노가 향한 곳은 주인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랍비들이 앉아 있었는데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들도 동의한 것이다.” — 바빌로니아 탈무드 기틴 55b–56a, 직접 번역
그는 이 침묵을 용서하지 않았다. 로마로 가서 유대인들이 반란을 꾀한다고 밀고했다.
제물 하나로 시험하다
증거로 삼기 위해 로마 황제가 제물을 성전에 보내도록 했다.
바르 카미차는 그 짐승을 옮기는 길에 흠집을 냈다. 로마 기준으로는 문제없지만, 유대 율법으로는 제물로 쓸 수 없는 흠이었다.
제사장들이 이 제물을 거절하면, 로마 눈에는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비칠 참이었다.
막을 기회, 그리고 막힌 기회
현자들이 모여 두 가지 방법을 논의했다.
흠이 있어도 제물을 바쳐 관계를 유지하자는 안, 그리고 밀고가 퍼지지 않도록 바르 카미차를 없애자는 안이었다.
랍비 즈카리야 벤 아브쿨로스가 둘 다 막았다. 흠 있는 제물을 바치면 훗날 선례가 되어 흠결 있는 제물이 허용된 걸로 오해될 것이고, 밀고자를 죽이면 밀고에 사형을 내리는 선례가 될 것이라 했다.
절차는 옳았다, 그런데
“즈카리야 벤 아브쿨로스의 지나친 신중함이 우리 집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태우고, 우리를 땅에서 내쫓았다.” — 바빌로니아 탈무드 기틴 56a, 직접 번역
즈카리야의 논리는 어느 하나 틀리지 않았다. 각각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두 안을 모두 막은 결과, 사태를 되돌릴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다. 전쟁으로 번졌고, 성전이 무너졌다.
오늘,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에는 두 종류의 방관이 있다.
하나는 잔치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침묵이다. 다른 하나는 절차를 앞세워 결단을 미룬 신중함이다.
둘 다 각자의 자리에서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두 방관이 겹쳐지자,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이 됐다.
지금 내가 지켜보고만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침묵이 나중에 어떻게 읽힐지 물어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