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에서 시리즈의 4부가 열리고, 여기서부터 다섯 편은 한 사건이다.
지금까지는 한 편이 하나의 사건이었는데, 이제부터는 한 사건이 다섯 편에 걸친다.
아침 식탁 앞에 지팡이 하나가 놓여 있다.
놓고 간 지팡이
어젯밤 손님이 두고 간 것이고, 굵고 묵직한 나무 지팡이인데 손잡이 아래에 은테가 둘려 있다.
테에는 제임스 모티머라는 이름과 1884라는 해가 새겨져 있다.
왓슨이 그것을 집어 들고 읽어 본다. 나이 든 시골 의사이고 평이 좋아 사람들이 선물한 것 같다고 그가 말한다. 걸어서 왕진을 많이 다녔을 것이라고, 쇠 물미가 닳아 있다고.
홈즈가 훌륭하다고 답한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자네가 밝게 빛나는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빛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천재가 아니면서 천재를 자극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이 말에 왓슨이 기뻐하는데, 홈즈가 지팡이를 받아 들고 곧바로 뒤집는다.
자네 결론은 대부분 틀렸다고 그가 말한다. 자극했다는 것은 자네의 오류를 짚는 사이에 진실 쪽으로 이끌렸다는 뜻이라고.
같은 물건에서 다른 사람
홈즈가 읽어 내는 것은 이렇다.
의사에게 주는 선물이라면 사냥 모임보다 병원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앞에 붙은 두 글자는 채링 크로스일 것이다.
병원에서 시골로 옮기는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일 리 없다.
그러면 갓 수련을 마친 젊은 사람이다.
날짜가 오 년 전이니 지금 서른이 안 됐다. 시골 개업을 택했으니 야심이 크지 않고,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명함이 아니라 지팡이를 두고 갔으니 건망증이 있다.
그리고 개가 있다. 지팡이 가운데에 이빨 자국이 남아 있는데, 자국 사이의 폭으로 보아 테리어보다 크고 마스티프보다 작다.
왓슨이 의사 명부를 펴서 확인한다. 모티머는 1882년 자격을 얻었고 채링 크로스 병원에서 이 년을 일했으며 그림펜에서 개업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문 앞에 온다. 개도 함께다. 홈즈는 지팡이 하나에서 사람과 개를 불러낸 셈이다.
1742년 문서
들어온 사람은 키가 크고 마른 젊은 남자다. 코가 부리처럼 튀어나왔고 안경을 꼈으며 인사 대신 홈즈의 두개골을 만져 봐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종이를 꺼낸다.
십팔 세기 초의 것 아니면 위조라고 홈즈가 말하자, 1742년이라고 모티머가 답한다.
이 문서를 자기에게 맡긴 사람이 석 달 전에 갑자기 죽은 찰스 바스커빌 경이라고 한다. 강단 있고 현실적이고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 문서만은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모티머가 그것을 읽는다.
이백 년 전의 밤
내전 무렵 바스커빌 저택의 주인은 휴라는 사람이었다. 거칠고 사나운 사람이었고, 그 이름이 서부 일대에서 좋지 않게 오르내렸다.
그가 이웃 농부의 딸을 마음에 두었는데 처녀는 그를 피했다. 어느 날 밤 휴가 패거리 대여섯과 함께 농장으로 내려가 그를 붙들어 저택 위층 방에 가둔다.
아래층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노랫소리와 욕설이 올라온다.
처녀는 담쟁이를 타고 처마 밑으로 내려와 황야를 가로질러 집으로 달아난다.
빈방을 본 휴가 미쳐 날뛴다. 그는 식탁 위로 뛰어올라 오늘 밤 저 계집을 잡을 수만 있다면 몸과 영혼을 악의 힘에 넘기겠다고 소리친다.
패거리 중 하나가 사냥개를 풀자고 외치자, 휴는 처녀의 손수건을 개들에게 맡기고 달빛 속으로 말을 몰아 나간다.
남은 열셋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말에 올라 따라간다.
밤 목동 하나를 지나치며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그는 겁에 질려 말을 못 하다가, 개들에게 쫓기는 처녀를 보았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을 보았다고 덧붙인다. 휴가 검은 암말을 타고 지나갔고 그 뒤로 소리 없이 달리는 개가 있었다고.
두 개의 돌 사이에서
얼마 안 가 그 검은 암말이 빈 안장에 고삐를 끌며 달려 지나간다.
말을 몰던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붙어 간다. 그러다 골짜기 어귀에서 개들을 만난다. 용맹으로 이름난 개들이 낑낑거리며 한데 모여 있다. 몇은 슬금슬금 물러나고 몇은 털을 세운 채 아래를 내려다본다.
셋만 골짜기로 내려간다. 옛사람들이 세워 둔 커다란 돌 둘이 서 있는 자리이고, 달빛이 그 사이를 환하게 비춘다.
달빛 아래 처녀가 지쳐 쓰러져 죽어 있고, 그 곁에 휴 바스커빌이 누워 있다.
그런데 세 사람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한 것은 그 두 사람이 아니다. 휴 위에 서서 목을 물어뜯고 있는 커다란 검은 짐승이다.
셋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그중 하나는 그날 밤에 죽고 나머지 둘은 남은 평생을 온전치 못하게 산다.
문서를 쓴 사람은 그 글 끝에 이유를 적어 두었다.
“If I have set it down it is because that which is clearly known hath less terror than that which is but hinted at and guessed.” 내가 이것을 적어 두는 까닭은, 분명히 알려진 것이 넌지시 들리고 짐작되는 것보다 덜 무섭기 때문이다. (『바스커빌 가의 개』 2장)
동화 수집가에게나
모티머가 다 읽고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린 뒤 홈즈를 건너다본다.
그래서요, 하고 홈즈가 말한다.
흥미롭지 않으시냐고 모티머가 묻는다.
“To a collector of fairy tales.” 동화 수집가에게나 그렇겠지요. (『바스커빌 가의 개』 2장)
모티머가 접은 신문을 꺼내며, 그러면 좀 더 최근 것을 드리겠다고 말한다.
올해 오월 십사일 자 지방 신문이고, 찰스 바스커빌 경의 죽음에서 밝혀진 사실을 짧게 정리한 기사다.
신문이 말한 것
찰스는 남아프리카에서 큰돈을 벌어 돌아와 이 년 전부터 저택에 살았다. 아이가 없었고,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지역 전체가 그 돈의 덕을 보기를 바란다고 공공연히 말해 왔다.
기사는 이 죽음에 범죄를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못 박는다.
사실은 이렇다. 그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주목 산책로를 걷는 습관이 있었다. 오월 사일 밤에도 시가를 들고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열두 시에 집사가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등을 들고 나가 찾았고, 비가 온 날이라 발자국이 또렷했다.
산책로 중간에 황야로 나가는 쪽문이 있고, 그 앞에 한동안 서 있던 자국이 있었다. 시신은 그 너머 끝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설명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집사의 진술에 따르면 쪽문을 지난 뒤부터 주인의 발자국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발끝으로 걸은 것 같았다고.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얼굴이 믿기 어려울 만큼 일그러져 있어서 모티머는 처음에 친구라는 것도 믿지 못했다. 숨이 막혀 죽을 때 드물지 않은 증상이라고 설명됐다.
부검에서 오래된 심장 질환이 확인됐고 배심은 그 의학적 증거를 따라 판정했다.
검시에서 말하지 않은 것
그것이 공개된 사실 전부라고 모티머가 말한다.
그러면 공개되지 않은 것을 달라고 홈즈가 답한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고 그가 말한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공개된 자리에서 미신을 편드는 모양이 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저택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게 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찰스의 마지막 몇 달을 이야기한다.
찰스는 그 문서를 마음에 깊이 담고 있었다. 자기 집 마당은 걸었다. 그러나 밤에 황야로 나가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았다.
밤에 왕진을 다니다가 이상한 짐승을 본 적이 있느냐고, 개 짖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죽기 세 주쯤 전에는 문간에서 모티머의 어깨 너머를 보며 얼굴이 굳었다.
돌아보니 커다란 검은 송아지 같은 것이 진입로 끝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찰스가 그 문서를 그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날 밤 시신 곁에서 그가 본 것이 있다.
집사는 검시에서 시신 주위 땅에 아무 자국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못 보았다.
모티머는 보았다. 조금 떨어진 자리였고 새로 찍힌 또렷한 자국이었다.
발자국이냐고 홈즈가 묻는다. 발자국이라고 그가 답한다.
남자 것이냐 여자 것이냐고 홈즈가 묻는다.
모티머가 잠깐 이상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다가 목소리를 낮춘다. 거대한 개의 발자국이었다고.
스무 걸음
여기서 홈즈가 하는 일이 이 편의 전부다.
그는 전설 쪽으로 가지 않는다. 대신 자리와 거리와 시간을 묻기 시작한다.
그 자국을 직접 보았느냐고 묻는다. 지금 당신을 보듯 또렷이 보았다고 모티머가 답한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느냐고 묻는다.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고 그가 답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은 못 보았느냐고 묻는다. 시신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져 있었고 아무도 거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그가 답한다. 자기도 그 전설을 몰랐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황야에 양치기 개가 많지 않으냐고 묻는다. 많지만 그것은 양치기 개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 자국이 시신 쪽으로 다가온 자국이었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한다.
산책로는 어떻게 생겼느냐, 울타리와 길 사이에 무엇이 있느냐, 쪽문은 잠겨 있었느냐, 높이는 얼마나 되느냐.
쪽문 앞에서는 어떤 자국을 보았느냐고 그가 묻는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한다. 찰스가 오 분에서 십 분쯤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다고.
어떻게 아느냐고 홈즈가 묻는다. 시가의 재가 두 번 떨어져 있었다고 모티머가 답한다.
훌륭하다고 홈즈가 말한다. 이 사람은 우리와 같은 부류라고.
그 자리에 자기가 없었다는 것
그러다 홈즈가 무릎을 친다.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하고 그가 말한다. 자갈 위에 쓰인 것이 얼마나 많았겠느냐고, 그것이 비에 씻기고 구경꾼들의 신발에 뭉개졌다고.
이 편에서 그가 화를 내는 유일한 대목이다. 화를 내는 대상은 전설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모티머를 몰아붙인다.
당신은 초자연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가 답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세상 안에서만 일해 왔다고 홈즈가 말한다. 악과 겨루기는 했지만 악의 아버지를 상대하는 것은 좀 과한 일이겠다고. 다만 그 발자국은 물질이라고.
원래의 그 개도 사람의 목을 뜯을 만큼은 물질이었고 동시에 악마였다고 모티머가 답한다.
그러면 왜 나를 찾아왔느냐고 홈즈가 묻는다. 조사해도 소용없다고 하면서 조사해 달라고 하는 셈 아니냐고.
조사해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모티머가 답한다.
한 시간 십오 분 뒤
그러면 무엇을 도와 달라는 것이냐고 홈즈가 묻는다.
헨리 바스커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는 것이다. 그가 한 시간 십오 분 뒤에 워털루역에 도착한다고 모티머가 시계를 보며 말한다.
찰스가 죽고 나서 찾아보니 그는 캐나다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형제 셋 가운데 둘째의 아들이고, 막내는 중앙아메리카로 달아나 1876년에 죽었다.
헨리가 마지막 바스커빌이다.
왜 조상의 집에 가면 안 되느냐고 홈즈가 묻는다.
거기 가는 바스커빌마다 나쁜 일을 당한다고 모티머가 답한다. 그런데 이 가난한 시골 전체가 그 사람이 거기 사는 데 기대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자기가 그 이해관계에 휘둘릴까 봐 이 일을 가져왔다고.
홈즈는 잠깐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한다. 당신 말대로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면 그것은 런던에서도 그 청년을 해칠 수 있어야 한다고. 교구 회의처럼 관할이 정해진 악마는 말이 안 된다고.
마차를 타고 워털루로 가서 헨리를 맞으시라고 그가 말한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정할 때까지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모티머가 묻는다. 스물네 시간이라고 그가 답한다.
오늘, 무엇을 붙들 것인가
모티머가 나가고 홈즈는 하루를 그 문제에만 쓴다. 왓슨에게는 저녁까지 돌아오지 말아 달라고 한다.
이 편에는 사건이 둘 놓여 있다.
하나는 이백 년 전의 이야기다. 달빛과 개와 두 개의 돌이 있고, 그것을 본 사람 셋 중 하나는 그날 밤에 죽었다.
다른 하나는 석 달 전의 자국이다. 스무 걸음 떨어진 자리에 있었고, 새로 찍혀 있었으며, 한 사람만 그것을 보았다.
전설은 설명을 준다. 왜 찰스가 밤에 황야를 피했는지, 왜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졌는지를 이어 준다. 이 집안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죽는 것도 그 줄에 꿰인다.
자국은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설 쪽을 집는다. 모티머도 그쪽으로 기울었고, 그 지역 사람들도 그쪽을 믿는다.
홈즈가 붙든 것은 설명해 주지 않는 쪽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그는 자기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아까워한다. 자갈 위에 쓰여 있다가 비에 씻겨 나간 것을 생각하며 화를 낸다.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자국은 그렇지 않다.
내가 아는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