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가 이 편에서 열린다.
앞의 다섯 부에서 홈즈는 누가 했는지를 알아내는 사람이었다.
이 부에서 그는 그다음을 정하는 사람이 된다.
새벽에 깨우는 손
1897년 겨울 끝의 몹시 추운 아침이다.
왓슨이 어깨를 잡아 흔드는 손에 깨어 보니 홈즈가 촛불을 들고 서 있다.
일이 시작됐으니 옷을 입고 나오라고 그가 말한다.
십 분 뒤 두 사람은 마차 안이고 채링크로스역으로 가는 길이다. 겨울 새벽이 희미하게 밝아 오고 일찍 나선 일꾼들이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지나간다.
역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고 켄트행 기차에 앉은 뒤에야 홈즈가 입을 연다.
기록자에 대한 불만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그가 읽어 준다. 켄트의 애비 그레인지에서 새벽 세 시 반에 쓴 것이고, 스탠리 홉킨스 경위가 즉시 와 달라고 적었다.
홉킨스가 자기를 부른 것이 일곱 번이고 일곱 번 다 부를 만한 일이었다고 홈즈가 말한다.
그러면서 왓슨의 기록을 한마디 한다. 모든 것을 과학적 연습이 아니라 이야기로 보는 버릇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 직접 쓰시라고 왓슨이 좀 삐딱하게 답한다.
쓰겠다고 그가 답한다. 지금은 바쁘지만 나중에 탐정술 전체를 한 권으로 모은 교과서를 쓸 생각이라고.
이 대화가 이 편의 끝에서 다시 쓰인다. 기록자와 판정하는 사람이 같은 방에 앉는 자리가 오기 때문이다.
도착하기 전에 아는 것
유스터스 경이 죽었을 것이라고 그가 말한다.
홉킨스의 글씨가 흔들려 있고 그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시신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인을 풀어 주었다는 말은 부인이 그 사이 묶여 있었다는 뜻이다.
범행은 자정 전에 일어났다고 그가 덧붙인다.
어떻게 아느냐고 왓슨이 묻는다.
기차 시각과 시간을 세어 보면 된다고 그가 답한다. 지방 경찰을 부르고, 런던에 연락하고, 홉킨스가 나가고, 다시 자기를 부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룻밤이라는 것이다.
부인의 이야기
저택에 닿으니 홉킨스가 문에서 맞는다.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아주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사실 남은 일이 별로 없다고 그가 말한다. 루이셤의 강도 일가 셋이 한 일이고 의심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부인은 아침 방 소파에 누워 있다. 한쪽 눈 위에 검붉게 부어오른 자리가 있고 하녀가 식초 물로 그것을 계속 적셔 주고 있다.
부인이 이야기를 해 준다.
결혼한 지 일 년이고 행복한 결혼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남편이 술에 빠진 사람이었다고 그녀가 말한다. 그런 사람과 한 시간을 같이 있는 것도 불쾌한 일인데, 밤낮을 묶여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고.
그리고 그날 밤 이야기가 이어진다. 열한 시가 넘어 집을 돌아보다 식당 창이 열려 있는 것을 알았다. 커튼을 젖히니 어깨가 넓은 노인이 들어서던 참이었다. 뒤에 둘이 더 있었다. 붙잡히고 목을 잡혔고 소리를 지르려다 눈 위를 맞고 쓰러졌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종이 줄로 의자에 묶여 있었고 입에 손수건이 물려 있었다.
그때 남편이 들어왔다. 노인이 부지깽이를 집어 지나가며 내리쳤고 그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셋은 은그릇을 모으고 포도주를 한 병 따서 각자 잔을 들고 있었다고 그녀가 말한다.
방 안의 것들
하녀 테레사가 한마디 보탠다. 자기 창에서 문 쪽에 남자 셋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한 시간쯤 뒤에 부인의 비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부인이 나가고 홈즈는 식당으로 간다.
그의 얼굴에서 흥미가 사라진 것을 왓슨은 알아본다. 수수께끼가 없으면 이 사람에게는 사건도 없다.
방은 크고 천장이 높다. 벽난로 옆에 무거운 떡갈나무 의자가 있고 그 사이로 붉은 줄이 얽혀 있다. 부인을 풀 때 줄은 벗겼지만 매듭은 남아 있다.
바닥에는 시신이 있다. 머리가 심하게 깨졌고 옆에 구부러진 부지깽이가 놓여 있다.
강도 이야기와 방 안의 물건들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진다.
세 개의 잔
그런데 벽난로 선반 옆 은그릇 자리에서 홈즈가 멈춘다.
잔이 셋 있고 셋 다 포도주가 묻어 있다. 그런데 그중 하나에만 앙금이 가라앉아 있다.
병은 삼분의 이쯤 남아 있고 옆에 긴 코르크가 놓여 있다.
그가 코르크를 집어 들여다본다. 저 서랍의 긴 코르크스크루로는 이렇게 뽑히지 않는다고 그가 말한다. 나사가 세 번 들어갔다 나온 자국이 있으니 주머니칼에 달린 짧은 스크루로 뽑은 것이다.
그러면 그 잔이 왜 이상한지는 홉킨스가 알아차리지 못한다.
홈즈도 더 말하지 않는다. 잔 세 개는 우연일 것이라고 하고, 사건이 분명해 보인다며 돌아가겠다고 한다.
기차에서 내리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의 얼굴이 계속 굳어 있다.
교외의 어느 역을 지날 때 그가 갑자기 승강장으로 뛰어내리고 왓슨을 끌어 내린다.
미안하다고, 그런데 그 사건을 이대로 둘 수가 없다고 그가 말한다. 자기가 가진 모든 감각이 아니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부인의 이야기는 완결됐고 하녀가 받쳐 주었고 세부가 정확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은 잔 세 개뿐이다.
그런데 아무 이야기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면 더 분명한 것을 찾았을 것이라고 그가 말한다.
이상한 것들의 목록
벤치에 앉아 그가 목록을 만든다.
강도들이 이 주 전에 시드넘에서 크게 한 건을 했고 그 인상착의가 신문에 났다. 강도 이야기를 꾸며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기사를 떠올릴 것이다.
게다가 큰 건을 막 해낸 강도들이 곧바로 다시 위험한 일을 하러 나오는 것은 드물다. 그렇게 이른 시각에 들어오는 것도 드물다. 소리를 막으려고 여자를 때리는 것도 드물다. 여럿이 남자 하나를 제압할 수 있는데 죽이는 것도 드물다. 더 가져갈 것이 많은데 조금만 가져가는 것도 드물다.
마지막으로 그런 사람들이 병을 반쯤 남겨 두고 가는 것이 아주 드물다.
각각은 다 가능하다고 왓슨이 말한다.
그러면 잔 이야기를 하자고 홈즈가 답한다.
두 사람이 마셨다
세 사람이 마셨다면 왜 하나에만 앙금이 있는가.
마지막 잔에 몰린 것이라고 왓슨이 말한다.
그것이 아니라고 홈즈가 답한다. 병에 앙금이 가득했으니 앞의 두 잔이 깨끗하고 세 번째만 진할 수는 없다.
그러면 설명은 하나다. 잔 둘만 쓰였고, 두 잔에 남은 것을 세 번째 잔에 부어 세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 한 가지가 맞으면 사건의 등급이 달라진다. 부인과 하녀가 알고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그 말은 진짜 범인을 감추려는 강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 된다.
선반 위의 자국
두 사람은 저택으로 돌아간다. 홉킨스는 보고하러 떠나 있다.
홈즈가 식당 문을 안에서 잠그고 두 시간 동안 방을 살핀다. 창과 커튼과 카펫과 의자와 줄을 차례로 본다.
그리고 벽난로 선반 위로 올라간다. 머리 위 높은 곳에 줄의 끝이 몇 치 남아 매달려 있다.
더 가까이 가려고 벽의 나무 받침에 무릎을 올린다. 그런데 그의 관심은 줄이 아니라 그 받침이다.
내려와서 그가 말한다. 사건을 얻었다고.
왜 세 치 아래에서 끊겼는가
종이 줄을 잡아당기면 어디서 끊어지겠느냐고 그가 묻는다. 당연히 철사에 매인 자리다.
그런데 이 줄은 위에서 세 치 아래에서 끊겼다.
여기가 닳아서라고 왓슨이 답한다.
그렇다고 홈즈가 말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쪽 끝은 닳아 있다. 칼로 그렇게 만들 만큼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쪽 끝은 닳지 않았다. 선반에 올라가면 보이는데 자른 자리가 깨끗하다.
그래서 순서가 나온다. 그 사람은 줄이 필요했는데 잡아당기면 부엌의 종이 울려 사람들이 깨어난다. 그래서 선반에 올랐고, 닿지 않아 받침에 무릎을 올리고, 칼을 댔다.
자기는 그 자리에 세 치가 모자랐다고 그가 말한다. 그러니 상대는 자기보다 세 치 큰 사람이다.
의자에 묻은 피
그리고 그가 의자를 가리킨다. 앉는 자리에 자국이 있다.
피라고 왓슨이 말한다.
그렇다고 홈즈가 답한다. 이것 하나로 부인의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부인이 범행이 일어날 때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면 그 자국은 생길 수 없다. 부인은 남편이 죽은 뒤에 그 의자에 앉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녀에게 가서 이야기를 듣는다.
하녀가 말해 준 것
테레사는 죽은 주인에 대한 미움을 감추지 않는다.
그가 술병을 자기에게 던진 것은 사실이라고 그녀가 말한다. 주인이 부인을 어떤 말로 불렀고, 부인의 오빠가 있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기가 대꾸했기 때문이다.
부인이 팔에 지닌 자국도 주인이 남긴 것이라고 그녀가 말한다. 부인은 그것도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십팔 개월 전에 두 사람이 영국에 왔고 도착한 다음 달에 그를 만났다. 작년 일월에 결혼했다는 것도 그녀가 알려 준다.
홈즈는 그 날짜를 적어 둔다. 그리고 항로를 다루는 회사로 간다.
배를 타고 온 사람
애들레이드에서 영국으로 오는 항로를 보니 그해 6월에 들어온 배가 한 척뿐이다. 승객 명단에 부인과 하녀의 이름이 있다.
그 배의 일등 항해사였던 사람이 이번에 선장이 되어 이틀 뒤 출항한다. 지금 시드넘에 머물고 있다.
성적은 훌륭하고, 배에서는 믿을 만하지만 육지에서는 성격이 급하고 격하다고 회사 사람이 말한다. 그러면서 충직하고 정직하고 마음이 따뜻하다고 덧붙인다.
홈즈는 그를 만나겠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전보를 한 통 보낸다.
나는 영장을 먼저 내지 않았다
베이커가로 돌아와 그가 말한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영장이 한번 나오면 이 세상 어떤 것도 그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Once or twice in my career I feel that I have done more real harm by my discovery of the criminal than ever he had done by his crime.” 내 경력에서 한두 번, 범인을 밝혀낸 것이 그가 저지른 일보다 더 큰 해를 끼쳤다고 느낀 적이 있네. (「애비 그레인지」)
“I had rather play tricks with the law of England than with my own conscience.” 나는 내 양심을 가지고 장난치기보다 영국 법을 가지고 장난치는 편을 택하겠네. (「애비 그레인지」)
저녁에 홉킨스가 찾아온다. 연못에서 은그릇을 찾았는데 사건이 더 어려워졌다고, 그리고 그 강도 일가가 같은 날 아침 뉴욕에서 붙잡혔다고.
그러면 켄트에서 그들이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홈즈가 말한다.
홉킨스가 힌트를 달라고 하자 눈속임이라는 말만 준다.
자기 몫과 남의 몫
홉킨스가 가고 나서 왓슨이 묻는 듯한 얼굴을 한다.
홈즈가 그 차이를 설명한다.
자기가 아는 것은 공식이 아니고 홉킨스가 아는 것은 공식이라는 것이다.
“I have the right to private judgment, but he has none.” 나에게는 사사로이 판정할 권리가 있지만 그에게는 없네. (「애비 그레인지」)
홉킨스는 전부 보고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직무에 배신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사건에서 그를 그런 자리에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문장이 이 편의 축이다. 그리고 6부 전체의 축이기도 하다.
선원의 이야기
계단에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린다. 키가 아주 크고 볕에 탄 젊은 남자다.
앉으시라고, 전보를 받았느냐고 홈즈가 말한다.
그가 앉아서 묻는다. 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고, 체포하려는 것이냐고.
담배를 물고 진실을 말해 보라고 홈즈가 답한다. 한 치라도 어긋나면 창으로 호루라기를 불겠다고.
선원이 다 말한다.
배에서 그녀를 만났고 그 항해 내내 그녀만 보였다. 약혼한 적은 없고 그녀는 늘 공정했으며 자기 쪽만 사랑이었다. 헤어질 때 그녀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자기는 다시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다음 항해에서 돌아와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것을 슬퍼하지는 않았다. 돈도 지위도 그녀가 가질 만한 것이라고 여겼다.
이번에 승진해서 새 배를 기다리며 시드넘에 있다가 시골길에서 하녀를 만났다. 그녀에게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그날 밤
떠나기 전에 한 번만 보고 싶었다고 그가 말한다.
하녀에게 집의 사정을 들었고, 그 밤에 창을 두드렸다. 그녀는 처음에 열어 주지 않았지만 언 밤에 그를 세워 두지 못했다.
두 사람이 창 안쪽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남편이 미친 사람처럼 뛰어들었다. 그녀를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부르고 손에 든 지팡이로 얼굴을 쳤다.
그래서 자기가 부지깽이를 집었고 둘이 맞붙었다. 팔에 첫 대를 맞은 자리가 있다고 그가 보여 준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왔다고 그가 말한다.
미안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그가 말한다. 그것은 그의 목숨이냐 내 목숨이냐의 문제였고, 그보다는 그의 목숨이냐 그녀의 목숨이냐의 문제였다고.
꾸민 것은 누구였나
그다음 이야기가 이 편에서 조용히 지나가는 자리다.
비명을 듣고 하녀가 내려왔다. 그는 포도주를 따서 그녀의 입에 조금 넣고 자기도 한 모금 마셨다.
하녀는 얼음처럼 차분했고 그 계획은 자기 것이나 마찬가지로 하녀의 것이었다고 그가 말한다.
강도가 한 일로 보이게 만들기로 했다. 하녀가 부인에게 그 이야기를 되풀이해 들려주는 동안 그가 올라가 줄을 잘랐다.
부인을 의자에 묶고, 줄 끝을 닳게 만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강도가 어떻게 저 위까지 올라가 줄을 잘랐는지가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은그릇을 조금 챙겨 강도처럼 보이게 하고, 십오 분 뒤에 알리라고 하고 나왔다. 은그릇은 연못에 넣었다.
재판
홈즈가 한참 담배를 피우고 나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는다.
한 마디도 자기가 모르던 것이 없었다고 그가 말한다.
그 받침에서 그 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곡예사나 선원뿐이다. 의자에 묶인 그 매듭을 만드는 사람도 선원뿐이다. 그리고 부인이 선원들과 함께 있었던 것은 그 항해 한 번이었다.
부인이 그렇게까지 감싸려 했다는 것은 같은 계층의 사람이고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홈즈가 제안을 한다. 스물네 시간 안에 사라진다면 아무도 막지 않겠다고.
그러면 전부 드러나느냐고 그가 묻는다. 드러날 것이라고 홈즈가 답한다.
선원이 화를 낸다. 법을 조금은 아는데 그러면 그녀가 공범으로 잡힌다고, 자기가 빠져나가고 그녀를 혼자 두겠느냐고.
홈즈가 두 번째로 손을 내민다. 시험해 본 것이고 자네는 매번 진짜라고.
그리고 자리를 만든다. 자네는 피고인이고, 왓슨은 영국 배심원이고, 자기는 판사라고.
배심원은 무죄라고 답한다.
“Vox populi, vox Dei. You are acquitted, Captain Crocker.” 민중의 소리가 신의 소리라네. 무죄요, 크로커 선장. (「애비 그레인지」)
일 년 뒤에 그 부인에게 돌아오라고 그가 덧붙인다. 그리고 그 뒤의 삶이 오늘 밤의 판결을 옳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오늘, 판정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
이 편에서 홈즈가 한 추론은 앞의 서른두 편과 다르지 않다.
잔 하나의 앙금에서 시작해 사람 하나에 닿았다. 방법은 여전히 작동한다.
달라진 것은 그다음이다. 그는 알아낸 것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자기가 쓴다.
그리고 그 근거로 자기에게는 사사로이 판정할 권리가 있고 홉킨스에게는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는 아무 직책도 없으므로 보고할 의무도 없다.
다만 의무가 없다는 것이 권한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만든 재판에는 판사가 하나, 배심원이 하나, 피고인이 하나다. 배심원은 피고인의 이야기만 들었고 죽은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열둘을 앉히기로 한 제도가 막으려던 것이 바로 그 자리다.
그런데 이 편은 그 재판을 우습게 그리지 않는다. 그 부인이 겪은 일을 다 적어 두고, 그 남편이 개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적어 둔다. 하녀가 술병을 맞은 것도 적어 둔다.
그러니 이 편이 묻는 것은 그가 옳았는지가 아니다. 이만큼 딱한 사정이 갖춰졌을 때 판정을 누가 해야 하는지다.
31편에서 그는 자기에게만 예외를 주었다. 여기서는 그 예외를 제도의 모양으로 만들어 놓는다.
나는 누군가를 대신해 판정을 내린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