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말이었고 바람이 온종일 창을 때렸다.
저녁이 되자 빗소리가 더 굵어졌다. 베이커가의 방에서 홈즈는 사건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고 왓슨은 바다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그런 밤에 초인종이 울린다. 이런 날 이런 시각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일로 온 것이 아니라고 홈즈가 말한다.
들어온 사람은 스물두 살쯤 된 청년이다. 우산에서 물이 떨어지고 얼굴은 창백하다.
삼대가 물려받은 것
이름은 존 오픈쇼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집안 이야기부터 꺼내겠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큰아들 엘리아스는 젊어서 미국으로 건너가 플로리다에서 농장을 했고, 남북전쟁에서는 남군으로 싸워 대령까지 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몇 해 뒤 그는 상당한 재산을 들고 영국으로 돌아와 호셤 근처에 자리를 잡는다.
돌아온 이유를 원작은 감추지 않는다. 그는 남부에서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정책에 강하게 반대한 사람이었고, 그 반감을 안고 미국을 떠났다.
성미가 사납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몇 주씩 방에서 안 나오는 때도 있었다. 조카만은 곁에 두어서, 열여섯 무렵에 존은 집안 열쇠를 다 쥐고 있었다.
다만 다락의 방 하나는 늘 잠겨 있었다.
봉투에서 쏟아진 다섯 알
1883년 3월의 어느 아침, 외국 소인이 찍힌 편지가 삼촌의 접시 앞에 놓여 있다. 인도 폰디체리에서 온 것이다.
봉투를 열자 마른 오렌지 씨 다섯 알이 접시 위로 굴러떨어진다.
조카는 웃음이 나오려다 삼촌의 얼굴을 보고 멈춘다. 입술이 처지고 눈이 튀어나오고 얼굴빛이 흙처럼 변해 있다.
봉투 안쪽 풀칠한 자리 위에 붉은 잉크로 K가 세 번 쓰여 있다. 삼촌은 그 글자를 소리쳐 읽고는 죽음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방으로 올라간다.
그날 그는 다락에서 놋쇠 상자를 꺼내 안에 든 서류를 모두 태운다. 그러고는 변호사를 불러 유언장을 쓰면서 재산을 동생에게 남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함께 넘긴다고, 견딜 수 없거든 가장 미운 원수에게 넘기라고 그는 조카 앞에서 말한다.
일곱 주 뒤 그는 정원 끝의 얕은 웅덩이에 엎드린 채 발견된다. 물은 두 자 깊이였고 몸에는 다친 자국이 없어서, 배심은 자살로 판정한다.
두 번 더 온 봉투
1885년 1월 4일 아침, 이번에는 아버지가 봉투를 연다. 마른 씨 다섯 알과 K 세 글자가 똑같이 들어 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서류를 해시계 위에 놓으라는 한 줄이 적혀 있다.
소인은 던디다.
아버지는 문명국에서 이런 장난에 놀아날 수 없다고 웃어넘긴다. 경찰에 가자는 아들의 말도 막는다.
사흘 뒤 그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백악 채굴 구덩이로 떨어져 죽는다. 어두웠고 길이 낯설었고 구덩이에는 울타리가 없었다. 배심은 사고사로 판정한다.
그리고 어제, 세 번째 봉투가 존 오픈쇼 앞으로 온다. 안에 든 것은 똑같고 소인만 다르다. 런던 동부다.
경찰에는 이미 갔다고 그는 말한다. 경위는 웃으며 들었고 장난이라고 보았다.
순경을 한 사람 붙여 주기는 했다. 다만 집에 있으라는 명령이라 오늘 밤 함께 오지는 않았다.
홈즈가 시킨 일
증거가 하나 더 있다. 삼촌이 서류를 태우던 날 재 사이에서 타다 남은 종이 한 장을 주웠다는 것이다.
푸른빛이 도는 종이이고 일기장에서 찢긴 자국이 있다. 머리에 1869년 3월이라고 적혀 있고 아래로 짧은 줄들이 이어진다.
4일에 허드슨이 왔다고 적혀 있고, 7일에 세 사람에게 씨를 보냈다고 적혀 있다. 9일과 10일에는 그중 둘이 정리됐다. 12일에는 나머지 한 사람을 찾아갔는데 별일 없었다고 되어 있다.
홈즈는 종이를 접어 돌려주며 한순간도 더 지체하지 말라고 한다.
그 종이를 놋쇠 상자에 넣고, 나머지는 삼촌이 태웠으며 이것만 남았다는 쪽지를 함께 넣으라고. 그리고 시킨 대로 상자를 해시계 위에 올려 두라고.
복수는 나중에 생각하라고 그는 말한다. 지금 할 일은 눈앞의 위험을 치우는 것이고, 저쪽은 이미 그물을 다 짜 놓았는데 이쪽은 아직 짜는 중이다.
아직 아홉 시가 안 됐으니 거리에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청년은 총을 가지고 있다고 답하고 워털루역으로 떠난다.
홈즈는 호셤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비밀은 런던에 있다고.
소인 세 개
청년이 나가고 한동안 홈즈는 말이 없다. 그러다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왓슨에게 묻는다.
세 통의 소인이 무엇이었느냐고.
폰디체리와 던디와 런던 동부다. 왓슨이 답하고 곧바로 자기가 답한 것의 뜻을 알아차린다.
전부 항구다. 쓴 사람은 배 위에 있다.
일곱 주와 사흘
여기서 홈즈가 한 걸음 더 간다.
폰디체리에서는 경고와 죽음 사이가 일곱 주였는데 던디에서는 사나흘이었다.
거리가 멀어서라고 하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편지도 같은 거리를 왔기 때문이다. 왓슨이 그 자리에서 막힌다.
“I think that those seven weeks represent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mail-boat which brought the letter and the sailing vessel which brought the writer.” 그 일곱 주는 편지를 실어 온 우편선과 편지 쓴 사람을 실어 온 범선의 차이였다고 나는 생각하네. (「다섯 개의 오렌지 씨」)
편지는 기관으로 가는 배에 실려 먼저 닿고, 사람은 바람으로 가는 배를 타고 뒤따라 닿는다. 폰디체리처럼 먼 곳에서는 그 차이가 일곱 주로 벌어지고 던디에서는 며칠로 좁아진다.
그래서 이번 편지가 무서운 것이다. 런던 소인이라면 편지와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뜻이고, 벌어질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K 세 글자
홈즈가 선반에서 백과사전의 K권을 내려 달라고 한다.
거기 실린 것은 큐 클럭스 클랜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남부의 퇴역 군인들이 만든 비밀결사다. 테네시와 루이지애나와 캐롤라이나와 조지아와 플로리다에 지부를 두었다.
흑인 유권자를 협박하고 자기들에게 맞서는 사람을 해치는 데 그 힘을 썼다. 손을 대기 전에 표지를 먼저 보냈는데, 지역에 따라 참나무 잎이나 멜론 씨나 오렌지 씨를 썼다.
표지를 받은 사람은 뜻을 꺾거나 나라를 떠나야 했다. 버티면 죽었고, 그 죽음은 대개 이상하고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조직은 1869년에 갑자기 무너졌다.
엘리아스 오픈쇼가 명부를 들고 미국을 떠난 때가 바로 그해다. 홈즈는 두 일이 원인과 결과일 수 있다고 본다.
한 사람이 두 번의 죽음을 배심이 속을 만큼 꾸미기는 어렵다. 그러니 여럿이고, 수단과 각오가 있는 자들이다.
K 세 글자는 한 사람의 머리글자가 아니라 조직의 표지다.
아침 신문
밤새 폭풍이 지나가고 아침에는 해가 든다.
왓슨이 내려오니 홈즈는 이미 아침을 먹고 있다. 오늘은 오픈쇼의 일로 바쁠 것이라고, 호셤이 아니라 시내부터 훑겠다고 그는 말한다.
왓슨이 식탁의 신문을 집어 든다. 그리고 한 줄에 눈이 멈춘다.
워털루 다리 근처의 비극이라는 제목 아래 기사가 실려 있다. 어젯밤 아홉 시와 열 시 사이에 순경이 도와 달라는 소리와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밤이 몹시 어둡고 사나워서 건져 내지 못했고, 나중에 수상 경찰이 시신을 찾았다.
주머니에서 나온 봉투의 이름은 존 오픈쇼였다.
기사는 그가 마지막 기차를 타려고 서두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선착장 가장자리를 밟은 것으로 본다. 몸에 다친 자국이 없으니 불운한 사고라고 적혀 있다.
두 사람은 한참 말이 없다. 왓슨은 홈즈가 그렇게까지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쓴다.
“That he should come to me for help, and that I should send him away to his death—!” 도와 달라고 나를 찾아온 사람을, 내가 죽으라고 돌려보냈다니. (「다섯 개의 오렌지 씨」)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인다. 그러다 제방은 역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은 청년이 스스로 그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리는 그런 밤에도 사람이 있어서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뒤늦은 추적
그날 홈즈는 종일 로이드 선박 등록부와 옛 신문을 뒤진다.
83년 1월과 2월에 폰디체리에 들른 배가 서른여섯 척이다. 그중 하나가 로운스타호인데, 런던에서 출항한 것으로 적혀 있는데도 이름이 미국 한 주의 별명이다.
던디 기록을 찾으니 85년 1월에 그 배가 거기 있었다.
지난주에 로운스타호는 런던 알버트 부두에 들어왔고, 그날 아침 이른 조수를 타고 사바나로 떠났다. 미국 태생은 선장과 항해사 둘뿐이고 셋 다 전날 밤 배를 비웠다.
홈즈는 오렌지를 하나 꺼내 씨를 짜낸다. 그중 다섯 알을 봉투에 넣고 안쪽 덮개에 두 사람의 머리글자를 적는다.
겉면에는 캘훈 선장 앞으로 쓴다. 사바나에 닿으면 편지가 먼저 와 있을 것이고, 전보는 이미 그곳 경찰에 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봉투는 닿지 않는다.
그해 추분 무렵의 폭풍은 유난히 길고 사나웠다. 대서양 어딘가에서 부서진 고물 조각 하나가 파도에 흔들리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거기에 L과 S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로운스타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오늘, 맞히는 것과 지키는 것
이 편에서 홈즈가 틀린 대목은 하나도 없다.
소인 셋에서 배를 읽었고, 간격 둘에서 배의 종류를 읽었고, 글자 셋에서 조직을 찾아냈다. 마지막에는 배 이름과 선장 이름까지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의뢰인은 죽었다.
이 시리즈는 편마다 홈즈가 관찰에서 결론으로 건너뛰는 자리를 묻는다. 그 물음이 지금까지 도약의 크기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 편은 다른 것을 묻는다.
도약이 정확했는데도 사람을 놓쳤다면, 그 도약은 무엇을 한 것인가.
청년이 방을 나선 시각은 아홉 시가 되기 전이었다. 홈즈는 그 시각에 거리가 붐빈다는 것을 알았고, 위험이 임박했다는 것도 알았다.
두 가지를 다 알고 그는 청년을 혼자 보냈다.
우리도 자주 그 자리에 선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을 쓰고, 알아낸 것을 가지고 움직이는 일은 뒤로 미룬다. 그 사이에 일은 벌써 벌어진다.
나는 옳은 답을 찾는 데 마음을 쏟느라 먼저 움직여야 할 일을 미룬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