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자기 힘만으로 왕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마키아벨리는 그 도움을 두 갈래로 나눈다. 귀족의 도움을 받는 길과, 인민의 도움을 받는 길이다. 이번 장은 어느 쪽이 더 오래가는 자리를 만드는지 묻는다.
귀족이 만든 왕
귀족은 인민을 억누르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혼자서는 그 힘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귀족들은 자기 편 가운데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운다. 그의 이름을 빌려 인민을 더 쉽게 누르려는 계산이다. 왕이 된 사람은 그 순간부터 자신을 세운 귀족들에게 빚을 진다.
인민이 만든 왕
인민도 같은 일을 한다. 다만 이유가 반대다.
귀족의 억압을 견디다 못한 인민이 자신들을 지켜 줄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소박하다. 더 누르지만 말아 달라는 것뿐이다. 인민이 원하는 것은 지배가 아니라 안 눌리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안전한가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도움으로 선 자리가 훨씬 안전하다고 잘라 말한다. 이유는 셋이다.
귀족의 도움으로 선 왕 곁에는 자신과 같은 급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남는다. 명령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인민의 도움으로 선 왕은 정상에 홀로 서 있어, 그와 대등하다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또 인민의 요구는 정당해서 들어주기 쉽지만, 귀족의 요구는 남을 누르는 것이라 정당하게 들어줄 방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인민이 등을 돌리면 그저 지지를 거두는 데 그치지만, 귀족이 등을 돌리면 그를 끌어내리려고 직접 움직인다.
나비스의 예
스파르타의 나비스는 이 원리를 몸으로 보여 준 사람이다.
그리스 전체와 로마 군대가 그를 포위했을 때도, 그는 나라를 지켜 냈다. 인민이 그의 편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ad un Principe è necessario avere il popolo amico, altrimenti non ha nelle avversità rimedio. 군주에게는 인민을 벗으로 두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역경이 닥쳤을 때 기댈 곳이 없다. (제9장)
오늘, 신뢰인가 이용인가
마키아벨리는 인민에게 기대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인민을 믿으라는 뜻인지는 다시 물어볼 만하다.
그가 든 이유는 인민의 요구가 소박해서 다루기 쉽다는 것이었다. 인민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인민을 상대하는 쪽이 덜 위험하기 때문에 기대라는 계산으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물어볼 만하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기댈 때, 그 사람을 믿어서 기대는가, 아니면 그 편이 나에게 안전해서 기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