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펨벌리

펨벌리 5, 네 살 적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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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숲으로 들어간다.

엘리자베스는 창밖을 본다. 여기까지 와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여관에서 확인은 했다. 그 집 사람들은 올여름에 내려와 있지 않다고 했다.

언덕을 넘자 보이는 것

길이 한참 오르막이다.

숲이 끝나는 자리에서 마차가 언덕을 넘고, 그러자 골짜기 건너편에 집이 보인다.

돌로 지은 큰 집이다. 뒤로는 언덕이 서 있고 앞으로는 개울이 넓어져 물이 고인다.

엘리자베스가 놀란 것은 크기가 아니다.

손을 댄 티가 없다는 것이다. 물길을 억지로 돌리거나 나무를 줄 맞춰 심어 놓지 않았다. 원래 있던 것을 그대로 두고 그 자리에 집을 앉혀 놓았다.

이렇게 좋은 자리를 이렇게 건드리지 않고 둔 곳을 그는 본 적이 없다.

안으로 들어가서

집 안도 밖과 같다.

방들이 크고 밝은데 무엇 하나 뽐내지 않는다. 값만 비싼 물건이 없고 눈에 거슬리는 색도 없다.

엘리자베스는 창가에 서서 밖을 본다. 어느 창으로 보아도 경치가 다르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스친다.

이 집의 안주인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 방들을 내 방이라 부르고, 이 창으로 보이는 것을 내 것이라 여기고, 외삼촌 부부를 손님으로 맞을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을 얼른 밀어낸다.

사십 년을 본 사람

집을 안내하는 사람은 나이 든 가정부다.

품위 있는 사람이고 말수가 많지 않은데, 주인 이야기가 나오면 달라진다.

외숙모가 먼저 묻는다. 주인은 어떤 분이냐고.

가정부는 곧바로 답한다. 세상에 그만한 분이 없다고.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놀란다.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

가정부는 이어서 말한다. 소작인 중에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인들에게도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서 그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외숙모가 웃으며 말한다. 주인을 좋게 말하는 하인이야 많지 않으냐고.

그러자 가정부가 이렇게 답한다.

“I have never had a cross word from him in my life, and I have known him ever since he was four years old.” 저는 그분께 험한 말 한마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네 살 적부터 보아 왔는걸요. (제43장)

방 안이 잠깐 조용해진다.

가정부는 여동생 이야기도 한다. 오빠가 얼마나 그 아이를 위하는지, 무엇이든 해 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초상화 앞에서

이층의 긴 방에 초상화가 걸려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 앞에 오래 선다.

그림 속의 사람은 그를 보고 있다. 웃음기가 있는 얼굴이다. 이 표정을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정부가 옆에서 말한다. 저 그림은 아버님이 살아 계실 적 것이라고.

엘리자베스는 생각한다. 이 집의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이렇게 보이는구나.

한 사람에 대해 정반대의 이야기 둘을 그는 이제 가지고 있다. 하나는 메리턴에서 들었고 하나는 여기서 듣는다.

정원에서 마주치다

일행은 밖으로 나온다.

정원지기를 따라 개울 쪽으로 걸어가는 참이다.

그때 집 모퉁이에서 사람이 나온다.

다아시다.

열 걸음도 안 되는 거리다. 피할 수가 없다.

두 사람 다 얼굴이 붉어진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깐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이내 다가와 인사를 한다.

집안은 다 편안하시냐고 묻는다. 언제 이곳에 오셨느냐고 묻는다. 얼마나 머무시느냐고 묻는다.

같은 것을 두 번 묻기도 한다. 그도 정신이 없는 것이다.

말투에 전에 있던 것이 없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색이 없고, 마지못해 말을 건네는 기색도 없다.

그는 하루 일찍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함께 온 분들을 소개해 달라고 청한다.

오늘, 사는 자리가 말하는 것

이 편은 이 시리즈에서 드문 자리다.

지금까지 서른한 편 동안 누군가는 늘 잘못 읽었다. 이 편에서는 반대다. 가장 오래 보아 온 사람의 말이 맞다.

그 증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간이다. 네 살 적부터 보아 왔다는 말이 그 앞에 붙는다. 사람이 손님에게 보이는 얼굴은 한나절이면 되지만 사십 년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자리다. 소작인과 하인은 주인의 좋은 얼굴을 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는지는 꾸며서 될 일이 아니고, 꾸민다 해도 오래가지 않는다.

엘리자베스가 메리턴에서 들은 증언에는 그 둘이 다 없었다. 기간은 몇 주였고, 말한 사람은 그 이야기로 얻을 것이 있었다.

이 편이 하는 말은 다아시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다.

증언을 고를 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를 오래 지켜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