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첫 번째 청혼

편지 5, 헛되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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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관은 조용하다.

샬럿과 콜린스는 로징스로 갔고 마리아도 따라갔다. 엘리자베스는 머리가 아프다며 남았다.

그는 제인의 편지를 꺼낸다.

런던에서 온 문장들

편지는 여러 통이다. 석 달 동안 온 것이다.

거기에는 불평이 없다. 원망도 없다. 잘 지낸다는 말이 있고 동생들의 안부를 묻는 말이 있고 날씨 이야기가 있다.

전에는 이 편지들을 읽으면서 언니가 씩씩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들은 이야기 뒤에 다시 읽으니 문장이 달라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정한 사람이 고르고 골라 쓴 문장으로 읽힌다.

초인종이 울린다.

방 안을 오가는 사람

다아시가 들어온다.

그는 서둘러 안부를 묻는다. 좀 나아졌느냐고. 엘리자베스는 차갑게 답한다.

그가 앉는다. 잠깐 앉아 있다가 일어난다. 방 안을 몇 걸음 걷다가 돌아선다.

그리고 말한다.

“In vain I have struggled. It will not do. My feelings will not be repressed. You must allow me to tell you how ardently I admire and love you.” 헛되이 싸웠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 마음은 눌러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얼마나 깊이 사모하는지 말하게 해 주십시오. (제34장)

엘리자베스는 놀란다. 얼굴이 붉어지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격려로 읽는다.

그래서 계속 말한다.

사랑한다는 말에 붙어 온 것

말이 길어진다.

마음만 이야기하면 짧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마음과 함께 그 마음을 막아 온 것들을 이야기한다.

집안이 기울었다는 것. 형편이 맞지 않는다는 것. 친척들의 처신을 생각하면 이 결혼이 자기에게 어떤 일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는 그것을 숨기지 않는 것이 정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하나도 빼지 않는다.

그렇게 불리한 말을 다 하면서도 그의 목소리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데, 그것은 그가 답을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는 내내 그는 승낙을 예정된 일로 두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듣는 동안 얼굴이 굳어 간다.

아니요

그가 답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얼굴에는 의심이 없다. 걱정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결과를 아는 사람의 얼굴이다.

엘리자베스는 거절한다.

그의 얼굴이 변한다. 놀라움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노여움이 온다.

왜냐고 묻는 대신 그는 이렇게 묻는다. 예의를 차릴 생각도 없이 거절당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겠느냐고.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되묻는다. 그러면 이쪽도 묻겠다고. 그렇게 나를 모욕할 작정으로 말해 놓고, 내가 왜 예의를 차려야 하느냐고.

말이 터진다.

언니의 일을 꺼낸다.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 당신이라고. 오늘 아침에 들었다고.

다아시는 부인하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맞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한다. 그 일에서는 자기 자신보다 친구에게 더 너그러웠다고.

위컴의 이름이 나온다. 한 사람의 앞길을 통째로 망가뜨려 놓고 그 이야기를 웃으며 듣느냐고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다아시의 낯빛이 하얘진다.

가장 마지막 사람

마지막에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청했더라도 나는 승낙할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당신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결혼할 사람이라고.

다아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짧게 사과한다.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고. 건강을 빈다고.

그리고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오늘, 답을 미리 읽은 사람

엘리자베스는 주저앉아 반 시간을 운다.

이 편에서 잘못 읽은 사람은 다아시다.

그는 모든 것을 정확히 계산했다. 재산의 차이도, 집안의 형편도, 그 결혼이 자기에게 어떤 말을 듣게 할지도 다 셈해 두었다. 셈하지 않은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상대의 대답이다.

그는 자기 마음을 여러 해 들여다보았고 그 마음을 이기려고 오래 싸웠다. 그 싸움이 워낙 길고 힘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순간 상대가 감동하리라 생각했다. 자기가 치른 값이 크니 받는 쪽도 그 값을 알아보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값을 치른 이야기는 값을 치른 사람에게만 감동적이다.

듣는 사람에게 남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좋아한다는 말과, 그 좋아함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한자리에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에 견디겠다는 말이 함께 붙어 온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