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은 아직 아무도 만난 적 없는 한 남자에게서 시작한다.
네더필드라는 빈 저택에 세를 든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롱본에 닿자, 온 동네는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채로 그를 어디에 앉힐지부터 정해 버린다.
웃으면서 시작하는 문장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진리다. (제1장)
책은 이 문장으로 문을 연다. 반박할 데가 없어 보이는 상식이다.
그런데 한 번만 더 읽으면 말하는 사람이 바뀌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아내가 필요하다고 말한 쪽은 정작 그 남자가 아니다.
필요한 쪽은 딸을 둔 집들이다.
자기 집의 바람을 세상이 다 아는 진리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바람이 아니라 사실이 되고, 사실이 되고 나면 아무도 그 앞에서 따져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는 이 뒤집힘을 설명하지 않는다. 진리라고 적고 그냥 지나간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웃으라는 뜻이다.
네더필드에 사람이 들어온다
베넷 부인이 남편에게 소식을 전한다. 네더필드가 드디어 나갔다는 것이다.
젊은 남자이고 잉글랜드 북쪽에서 왔다. 월요일에 사두마차로 내려와 집을 보자마자 계약했고, 다음 주면 하인들이 먼저 들어온다고 했다.
이름은 빙리. 독신이고 한 해 수입이 사천에서 오천 파운드다.
베넷 부인은 그 숫자를 말한 다음에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딸들한테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남편은 시치미를 뗀다. 그게 딸들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다.
아내는 답답해한다. 그 사람이 우리 딸 중 하나와 결혼할 거라는 뜻이잖아요.
가지 않겠다는 말
베넷 씨는 찾아갈 생각이 없다고 못 박는다. 대신 편지를 한 장 써 보내겠다고 한다.
딸들 중 마음에 드는 쪽을 골라도 좋다고, 다만 우리 리지한테 좋은 말 한마디는 꼭 넣어 두겠다고.
아내가 발끈한다. 리지는 제인만큼 곱지도 않고 리디아만큼 싹싹하지도 않은데 왜 늘 리지냐는 것이다.
남편의 대답은 딸들을 편들지 않는다. 그는 다섯 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아이들이라고 말한 뒤, 리지만은 언니 동생들보다 머리가 좀 돌아간다고 덧붙인다.
아내가 따진다. 당신은 내 신경을 괴롭히는 게 낙이죠.
남편은 정색하지 않고 받아넘긴다. 자기는 부인의 신경을 아주 존중한다고, 그 신경들과는 적어도 이십 년을 알고 지낸 오랜 친구 사이라고.
이 대화에서 웃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스물세 해를 함께 살았어도 베넷 부인은 남편이 언제 진담을 하는지 끝내 가려내지 못했고, 남편 쪽도 그것을 고쳐 줄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미 다녀온 사람
정작 베넷 씨는 빙리를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 축에 든다.
그는 처음부터 갈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안 간다고 우겼다.
집안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방문 다음 날 저녁이다. 모자를 손질하는 둘째 딸을 보다가 그가 불쑥 말을 던진다. 빙리 씨가 저 모자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구나.
베넷 부인이 받아친다. 찾아가지도 않을 거면서 그 사람 취향을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고.
엘리자베스가 어머니를 달랜다. 무도회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롱 부인이 소개해 주기로 했다고.
어머니는 그 말도 믿지 않는다. 롱 부인에게도 조카딸이 둘이나 있으니 남의 딸을 앞세워 줄 리 없다는 것이다.
키티가 기침을 한다. 어머니가 그만 좀 하라고 나무라자 아버지가 끼어든다. 키티는 기침할 때를 고를 줄 모른다고.
메리는 뭔가 그럴듯한 말을 보태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입만 달싹인다.
베넷 부인이 소리친다. 이제 빙리 씨 얘기라면 지긋지긋해요.
그러자 남편이 아주 유감스럽다는 얼굴로 말한다. 진작 말해 주지 그랬느냐고, 오늘 아침에 알았더라면 찾아가지 않았을 텐데 이미 다녀왔으니 이제 와서 모르는 사이로 지낼 수는 없게 됐다고.
방 안이 뒤집힌다. 그가 원한 것이 정확히 그 표정이었다.
오늘, 만나기 전에 정해지는 것
빙리는 이 편에서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편이 끝날 때쯤 그는 이미 사윗감이 되어 있고, 무도회에서 누구와 춤을 출지까지 사람들 입에서 정해진다. 리디아는 자기가 제일 어리지만 키는 제일 크니 겁날 것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이렇게 자리부터 받는 동안, 그 자리를 만든 재료는 사두마차 한 대와 연 수입 숫자 하나뿐이었다.
이 시리즈가 마흔 편 동안 따라갈 것이 이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읽고, 대개는 만나기 전에 다 읽어 버린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이미 정해 두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