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열두 척의 하루

5부 명량 3, 일기가 적은 것과 적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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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의 싸움은 아침에 시작해 오후까지 이어진다.

물목을 막아선 배가 늘면서 싸움의 모양이 바뀐다. 처음에는 대장선 하나가 밀려오는 배들을 혼자 받아 냈지만, 이제는 여러 척이 나란히 화포를 쏜다. 좁은 물길에 갇힌 왜선은 뒤로 물러나려 해도 뒤에 자기편 배가 빽빽해 돌아설 자리가 없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

싸움이 한창일 때 이순신의 배에는 준사라는 사람이 타고 있다.

그는 왜인인데 앞서 조선에 항복해 함께 지내고 있었다. 안골포에서 싸운 적이 있어 그쪽 장수들의 얼굴을 안다.

준사가 바다를 내려다보다가 소리친다. 물에 떠 있는 붉은 옷 입은 시신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안골포의 적장 마다시라고 한다.

이순신은 사부 김돌손에게 갈고리를 던지게 한다. 시신이 뱃머리로 끌어 올려지고, 준사가 다시 들여다본 뒤 맞다고 한다.

그는 그 시신을 적이 보는 앞에 내걸게 한다. 그것을 본 왜군의 기세가 눈에 띄게 꺾인다.

서른한 척

그날 부서진 왜선은 서른한 척이다.

나머지 배들은 더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난다. 물목은 끝내 열리지 않고, 서해로 올라가려던 길도 그날은 막힌다.

싸움이 끝난 뒤 이순신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물이 빠져 큰 배를 대기 어려운 데다, 적이 밤에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함대는 그날로 진을 옮겨 당사도에서 밤을 지낸다.

일기에 적혀 있지 않은 것

이 하루는 난중일기에서 가장 길게 적힌 날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 몇 가지는 그 안에 없다.

물살이 어느 순간 방향을 바꾸어 왜선을 쓸어 갔다는 설명이 없다. 소용돌이가 배를 삼켰다는 대목도 없고, 쇠사슬을 물목에 걸어 배를 걸었다는 이야기도 없다. 물에 대한 언급은 물이 빠져 큰 배에 맞지 않으니 진을 건너편으로 옮겼다는 정도다.

그런 이야기들은 뒤에 덧붙은 것이다. 울돌목의 물살이 실제로 빠르다는 사실에 상상이 얹히면서 자리를 잡았고, 영화와 소설을 거치며 더 또렷해졌다.

그렇다고 물길이 상관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순신이 그 자리를 고른 이유가 물길이었으니 물길은 처음부터 이 싸움의 전제였다. 다만 물이 알아서 이겨 준 것과, 물을 계산에 넣고 사람이 싸운 것은 다른 이야기다.

열두 척인가 열세 척인가

이 시리즈가 계속 써 온 열두 척이라는 수에도 같은 사정이 있다.

열두 척은 이순신이 보성에서 장계를 올릴 때의 수다. 회령포에서 배설에게 넘겨받은 배가 그만큼이었다.

그 뒤 명량 당일에는 한 척이 더해져 열세 척이었다는 것이 지금의 정설이다. 그 한 척이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가져온 배였는지, 백성들이 뒤늦게 끌고 온 배였는지는 기록마다 다르다.

한 척 차이가 승패를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자리를 그냥 넘기면 이야기는 조금씩 매끄러워지고, 매끄러워진 이야기는 어느새 사실과 다른 자리에 가 있다.

그날의 마지막 줄

일기의 그날 기록은 이렇게 끝난다.

此實天幸。 이는 실로 천행이었다. (1597년 9월 16일)

천행은 하늘이 준 다행이라는 뜻이다. 그가 이 말을 쓴 날은 하루 종일 물목에 서서 백서른세 척을 막아 낸 날이다.

오늘, 천행이라는 말

그날 이순신이 한 일을 늘어놓으면 운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들이 나온다. 그는 전날 자리를 골랐고, 저녁에 다짐을 받았고, 아침에 가장 앞에 섰고, 물러난 배들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도 마지막 줄에는 천행이라 적었다.

이 말을 겸손으로 읽을 수도 있고, 자기가 어쩌지 못한 부분을 정확히 본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는 이긴 다음 날 자기 공을 세는 대신 배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