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1월 1일, 여수 전라좌수영. 이순신은 새해 첫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남긴 첫 줄은 전쟁이 아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다.
새해, 여수 좌수영에서
아우 여필과 조카 봉과 아들 회가 새벽부터 찾아와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병마사가 보낸 군관도 설 선물과 화살 몇 가지를 들고 온다. 겉으로는 평온한 새해 아침이다.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지 벌써 한 해가 넘었다. 그동안 그는 좌수영의 전선을 정비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일에 매달려 왔다.
어머니를 그리며 쓴 첫 줄
찾아온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다.
但離天只, 再過南中, 不勝懷恨之至。 다만 어머니 곁을 떠나 남쪽에서 다시 해를 넘기니, 그리운 마음을 이길 수가 없다. (임진년 1월 1일)
어머니를 떠나 이 남쪽 임지에서 새해를 맞은 것이 벌써 두 번째다. 나랏일을 맡은 몸이라 마음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앞으로 칠 년을 채울 일기의 첫 줄이 된다. 그는 아직 모른다. 이 일기가 전쟁으로, 그리고 자기 죽음의 문턱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넉 달 뒤, 급보가 날아들다
넉 달이 지난 4월, 좌수영에 급한 전갈이 날아든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해 성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이다.
곧이어 경상우수사 원균의 전갈이 뒤따른다. 그의 함대는 왜군의 기세에 밀려 이미 거의 무너진 뒤였다. 원균은 이순신에게 지원을 다급히 청한다.
좌수영 안은 술렁인다. 훈련만 거듭하던 함대가 이제 진짜 싸움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모두를 긴장시킨다.
남의 바다인가, 우리 바다인가
이순신의 관할은 전라도 바다다. 경상도의 위기는 엄밀히 말해 그의 소관이 아니다.
휘하 장수 몇몇이 이 점을 들어 반론을 편다. 관할을 넘어 남의 바다까지 나가는 것은 무리이며, 자칫 전라도 방비마저 허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이렇게 답한다. 왜적이 이미 국경을 넘어 나라 전체를 위협하는 마당에, 우리 도와 남의 도를 가릴 때가 아니라고.
오늘, 결심이 서는 자리
새해 첫날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사람이, 넉 달 만에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결심을 세운다.
이순신은 함대를 이끌고 경상도 해역으로 나가기로 한다. 관할이라는 선을 넘는 결정이지만, 그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배들은 곧 여수를 떠나 경상도 바다를 향한다. 그 바다 끝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옥포라는 이름의 포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