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끝난 뒤 이슈마엘과 퀴퀘그는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사흘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그림이었다.
퀴퀘그는 걸음마다 차분했고, 말 한마디마다 무게가 있었다. 문명인이라 자부한 이슈마엘보다 오히려 더 그래 보였다.
왕자로 태어나 뱃사람이 되기까지
그날 오후, 퀴퀘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코코보코라는 섬 족장의 아들이었다.
낯선 세계, 특히 기독교 나라가 궁금했던 그는 어느 날 지나가는 배에 몰래 올랐다. 아버지도 섬도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러나 배 위에서, 그리고 뭍에 내려서 그가 본 것은 기대와 달랐다. 선원들의 행실은 그가 떠나온 섬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돌아갈 수 없는 사람
이제 그는 이도 저도 아닌 자리에 서 있었다. 자기 섬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았고, 이 세계에 완전히 속하기에는 처음의 기대가 이미 깨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작살잡이로 산다. 어느 쪽 땅에도 완전히 발을 딛지 않은 채, 바다 위에서만 자기 자리를 찾은 사람처럼.
정확히 반으로 나눈 돈
그날 밤, 퀴퀘그는 자신의 돈주머니를 꺼내 침대 위에 쏟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하나하나 세어 정확히 반으로 나누었다.
그는 절반을 이슈마엘에게 내밀며 이마를 맞댔다.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를 죽음까지 돕는 사이라고, 그는 선언했다.
낯선 신 앞에 함께 앉다
의식이 끝나고 퀴퀘그는 여느 밤처럼 요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이슈마엘도 그 곁에 앉았다.
“I was a good Christian… How then could I unite with this wild idolator in worshipping his piece of wood?… to do to my fellow man what I would have my fellow man to do to me—THAT is the will of God.” 나는 좋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낯선 우상 숭배자와 함께 나무 조각 앞에 앉을 수 있는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 그것이 신의 뜻이다. (제10장)
이슈마엘은 이렇게 판단했다. 자신의 신앙이 가르친 것은 이웃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벗의 자리에 잠시 함께 앉는 것을 막지 않는다고.
오늘, 사흘 전과 지금
사흘 전, 같은 방 같은 시간에 이슈마엘은 이 의식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오늘 그는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다.
바뀐 것은 신도 의식도 아니었다. 바뀐 것은 오직 그 옆에 있는 사람을 아는 만큼이었다.
이제 두 사람은 함께 낸터킷으로 갈 배를 알아보러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