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시계가 새벽 두 시를 치자 장발장이 깬다.
침대가 너무 좋아서 깼다. 열아홉 해 동안 침대에서 자 본 적이 없었으니, 옷을 입은 채 누웠어도 그 느낌이 너무 낯설어 잠이 버티지 못했다. 네 시간 넘게 잤고 피로는 가셨다.
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지만 잠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일과 방금 일이 뒤엉켜 떠오르다 가라앉는 가운데, 다른 생각을 다 밀어내고 자꾸 돌아오는 생각이 하나 있다. 마글루아르 부인이 식탁에 놓았던 은그릇 여섯 벌과 큰 국자다.
쇠로 만든 촛대 하나
은그릇은 바로 저기, 이 방으로 오면서 지나온 옆방의 침대 머리맡 작은 찬장 안에 있다. 그는 식당에서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그 찬장을 잘 봐 두었다.
묵직한 옛 은이다. 큰 국자까지 치면 적어도 200프랑은 받을 것이다. 열아홉 해 동안 번 돈의 두 배다. 관청이 떼어 가지만 않았어도 더 벌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한 시간 내내 그의 마음이 흔들린다. 세 시가 친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아 구석에 던져 둔 배낭을 더듬는다. 그러다 신을 벗어 침대 옆 돗자리에 가만히 놓고, 다시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엉뚱하게도 감옥에서 알던 브르베라는 죄수의 바지 멜빵이 자꾸 떠오른다. 바둑판 무늬가 든 무명 멜빵이었다.
시계가 십오 분인지 반인지 모를 소리로 한 번 더 울리고, 그 소리가 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창으로 간다. 보름달 위로 구름이 바람에 쫓겨 흘러가 방 안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한다. 창살 없는 창은 작은 고리 하나로만 닫혀 있고, 정원을 둘러싼 흰 담은 낮아 넘기 쉽다.
그는 배낭을 메고 모자를 눌러쓰고 지팡이를 창가에 세워 둔 뒤, 배낭에서 꺼낸 물건을 오른손에 쥔다. 한쪽 끝이 뾰족한 짧은 쇠막대다. 툴롱에서 죄수들에게 바위를 깨게 할 때 쓰던 광부용 촛대인데, 바위에 박아 세우도록 끝이 날카롭다.
그는 숨을 죽이고 옆방 문으로 간다. 주교의 방이다.
주교가 닫지 않아서, 문은 조금 열려 있다.
기름 마른 경첩
그가 손가락 끝으로 밀자 문이 소리 없이 조금 더 열린다. 다시 밀어도 문 바로 옆의 작은 탁자 때문에 들어갈 틈이 모자란다.
세 번째로 세게 밀자 기름이 마른 경첩 하나가 어둠 속에서 길고 쉰 소리를 낸다.
그는 그 자리에 굳는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대장간 망치처럼 뛴다. 노인이 일어나고 두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십오 분 안에 온 시내가 들썩이고 헌병이 올 것이다. 끝났다고 그는 생각한다.
몇 분이 지나도록 방 안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아무도 깨지 않았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제 빨리 끝내자는 생각뿐이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선다.
달빛이 비춘 얼굴
방 안쪽에서 고르고 조용한 숨소리가 들린다. 그는 가구에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걷다가, 생각보다 일찍 침대 앞에 이른다.
그때 반 시간 가까이 하늘을 덮고 있던 큰 구름이 갈라지고, 긴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주교의 얼굴을 비춘다.
주교는 자고 있다. 추운 알프스의 밤이라 갈색 털옷을 입은 채 누웠고, 고개는 베개 위로 젖혀져 있으며, 주교 반지를 낀 손 하나가 침대 밖으로 늘어져 있다. 얼굴은 편안하다.
장발장은 그림자 속에 서 있다. 오른손에 쇠막대를, 왼손에는 어느새 벗어 든 모자를 쥐고 있다. 그는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벽난로 위 십자가가 달빛에 어렴풋이 드러나, 두 사람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갑자기 장발장이 모자를 다시 쓴다.
그는 주교를 보지 않고 침대를 따라 빠르게 걸어 머리맡 찬장으로 간다. 자물쇠를 비틀려고 쇠막대를 들었는데, 열쇠가 꽂혀 있다. 찬장을 열자 맨 먼저 은그릇 바구니가 보인다.
그는 바구니를 들고 이제는 소리도 신경 쓰지 않고 방을 가로질러 골방으로 돌아온다. 창을 열고 지팡이를 쥐고 창턱을 넘는다. 은그릇을 배낭에 쏟아 넣고 빈 바구니는 던져 버린 뒤, 정원을 가로질러 담을 뛰어넘어 달아난다.
나무 숟가락으로 먹는 아침
이튿날 해가 뜰 무렵 주교는 정원을 거닐고 있다. 마글루아르 부인이 허둥지둥 뛰어나온다.
주교님, 은그릇 바구니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안다고 주교는 답한다. 방금 화단에서 주운 빈 바구니를 부인에게 내민다. 바구니가 떨어지며 꺾어 놓은 풀포기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던 참이다.
그릇이 없다는 것을 알고 부인이 소리친다. 어젯밤 그 사람이 훔쳐 갔다고, 저 담으로 넘어갔다고.
주교는 잠시 말이 없다가 진지한 눈을 들고 조용히 묻는다.
애초에 그 은그릇이 우리 것이기는 했소?
부인이 말을 잃자 주교가 잇는다.
그건 내가 오래 붙들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소. 임자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도 가난한 사람이었소.
부인은 자기나 아가씨 걱정이 아니라 주교님 걱정이라고 한다. 이제 무엇으로 진지를 드시느냐고. 주석 그릇은 냄새가 나고 쇠그릇은 맛이 배어난다고 투덜댄다.
그럼 나무 수저로 하지, 하고 주교가 말한다.
조금 뒤 주교는 장발장이 어젯밤 앉았던 바로 그 식탁에서 아침을 든다. 빵을 우유에 적셔 먹는 데는 나무 숟가락도 필요 없다고 그는 즐겁게 말한다. 마글루아르 부인은 오락가락하며 혼자 투덜거린다. 그런 사람을 들이고 옆방에 재우다니, 도둑질만 하고 간 게 다행이라고.
둘이 막 식탁에서 일어서려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들어오시오, 하고 주교가 말한다.
촛대는 왜 두고 갔소
문이 열리고 낯선 무리가 문간에 선다. 헌병 셋이 한 사람의 멱살을 쥐고 있는데, 그 한 사람이 장발장이다.
앞장선 헌병 하사가 들어와 경례를 붙인다. 주교님.
고개를 떨구고 있던 장발장이 그 말에 놀라 얼굴을 든다. 신부가 아니라 주교였단 말인가.
주교가 나이가 허락하는 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아, 왔구려, 다시 보니 반갑소! 그런데 이 사람아, 촛대도 함께 주지 않았소. 그것도 은이라 200프랑은 받을 텐데, 왜 그릇과 함께 가져가지 않았소?
장발장이 눈을 크게 뜨고 노인을 바라본다. 그 얼굴은 어떤 말로도 옮길 수가 없다.
헌병 하사가 묻는다. 그럼 이 사람 말이 사실이었습니까? 길에서 떠나는 사람처럼 걷고 있기에 붙잡아 봤더니 은그릇이 나왔고, 하룻밤 묵게 해 준 늙은 신부가 준 것이라고 하더라고.
주교가 웃으며 받는다. 그랬겠지요, 그래서 여기까지 데려오셨구려. 잘못 아신 거요.
그럼 놓아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헌병들이 손을 놓자 장발장이 뒷걸음질 친다. 정말 나를 놓아주는 거요, 하고 그는 잠꼬대처럼 웅얼거린다.
주교가 벽난로로 가서 은촛대 두 개를 들고 와 그에게 건넨다. 떠나기 전에 당신 촛대를 가져가시오.
두 여자는 한마디도, 손짓 하나도, 주교를 거스를 눈길 하나도 보내지 않고 그것을 지켜본다. 장발장은 온몸을 떨며 넋 나간 얼굴로 촛대를 받는다.
이제 평안히 가시오, 하고 주교가 말한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정원으로 다닐 것 없소. 길 쪽 문으로 드나들면 되오. 그 문은 밤이나 낮이나 걸쇠로만 닫혀 있으니.
헌병들이 물러간다.
장발장은 금방 쓰러질 사람 같다. 주교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잊지 마시오, 절대 잊지 마시오. 이 은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당신이 나에게 약속했다는 것을.
장발장은 약속한 기억이 없어 말을 잃는다. 주교는 그 말에 힘을 주고 나서 엄숙하게 잇는다.
“Jean Valjean, mon frère, vous n’appartenez plus au mal, mais au bien.” 장발장, 내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이오. (1부 2권 12장)
내가 산 것은 당신의 영혼이오, 하고 주교는 덧붙인다. 그것을 어두운 생각에서 거두어 하느님께 드리오.
발밑의 40수
장발장은 도망치듯 도시를 빠져나온다. 들길과 오솔길을 아무 데로나 걷다가 자꾸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아침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도 고프지 않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화가 치민다. 감동한 건지 모욕당한 건지 그는 가르지 못한다. 이따금 이상하게 마음이 누그러지면, 지난 열아홉 해 동안 굳힌 것으로 그것을 밀어낸다. 차라리 헌병들에게 끌려 감옥에 갔더라면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았을 텐데 싶다.
해가 기울 무렵 그는 디뉴에서 세 리외쯤 떨어진, 아무도 없는 붉은 들판의 덤불 뒤에 앉아 있다. 지평선에는 알프스뿐이다.
그때 노랫소리가 들린다. 열 살쯤 된 사부아 아이가 손풍금을 옆에 차고 마멋 상자를 등에 지고 오솔길을 걸어온다. 마을에서 마을로 떠도는 아이다.
아이는 걸으며 손에 든 동전 몇 닢을 공기놀이하듯 손등으로 받는다. 그 가운데 40수짜리 은화가 하나 있다. 아마 아이가 가진 전부일 것이다. 덤불 옆에서 아이가 동전을 던져 올리는데, 40수짜리가 손등을 벗어나 장발장 쪽으로 굴러온다.
장발장이 그 위에 발을 올린다.
아이는 동전이 구르는 것을 눈으로 따라왔고, 그것을 보았다. 아이는 놀라지 않고 곧장 그에게 다가온다.
아저씨, 내 동전요.
이름이 뭐냐, 하고 장발장이 묻는다. 프티 제르베요, 아저씨.
꺼져라.
아이가 다시 동전을 돌려 달라고 한다. 장발장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는다. 아이는 그의 작업복 깃을 잡고 흔들고, 징 박힌 큰 구두를 밀어내려 애쓰며 운다. 내 동전, 내 은화, 내 40수!
장발장이 고개를 들어 넋 나간 눈으로 아이를 보다가, 지팡이를 쥐며 무섭게 소리친다. 거기 누구냐!
나예요, 프티 제르베요! 발 좀 치워 주세요!
장발장이 벌떡 일어선다. 발은 여전히 동전 위에 둔 채로 그가 소리친다. 아직도 거기 있었냐, 당장 꺼지지 못해!
아이는 그를 바라보다가 온몸을 떨기 시작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도 못 지르고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난다. 숨이 차서 멈춘 아이가 멀리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는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문 앞에 무릎 꿇은 사람
해가 진다. 장발장은 아이가 달아난 뒤로 같은 자세로 서 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 열이 나는 것 같다. 저녁 바람의 냉기에 그는 몸을 떨며 정신이 든다.
지팡이를 집으려고 몸을 숙이는데, 발에 밟혀 반쯤 흙에 박힌 40수짜리 은화가 자갈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그는 무엇에 데인 것처럼 세 걸음 물러섰다가, 달려들어 동전을 움켜쥐고 들판 사방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그는 아이가 사라진 쪽으로 백 걸음쯤 달려가 멈춰 서서 있는 힘을 다해 부른다. 프티 제르베! 프티 제르베!
대답이 없다.
그는 달리다 멈춰서 부르고 다시 달린다. 말을 탄 신부를 만나자 열 살쯤 된 사부아 아이를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보지 못했다고 하자 그는 5프랑짜리 은화 두 닢을 신부에게 쥐여 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써 달라고 한다. 다시 묻고, 다시 두 닢을 쥐여 준다.
그러고는 넋이 나간 얼굴로, 나는 도둑이니 나를 잡아가게 해 달라고 말한다.
신부는 겁에 질려 말을 몰아 달아난다.
장발장은 계속 달리고 부른다. 엎드린 아이처럼 보이는 것으로 두세 번 뛰어가지만 덤불이고 바위다. 오솔길 세 갈래가 만나는 자리에서 달이 떠오른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름을 세 번 부른다. 대답은 메아리조차 없다.
다리가 꺾인다. 그는 큰 돌 위에 쓰러져 두 주먹을 머리카락에 박고 얼굴을 무릎에 묻은 채 외친다.
나는 비참한 놈이다!
그리고 그는 운다. 열아홉 해 만에 처음 우는 것이다.
그가 그 밤에 몇 시간을 울었는지, 울고 나서 무엇을 했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밤이 지난 새벽 세 시쯤 그르노블에서 디뉴로 들어오던 마차꾼이 주교관 거리를 지나다가, 주교의 집 문 앞 어둠 속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 한 남자를 보았다고 한다.
오늘, 나눠 진 값
이 편에서 은 400프랑어치가 주교의 집을 떠났다. 그릇이 200프랑, 촛대가 200프랑이다.
그 아침부터 마글루아르 부인은 나무 수저로 상을 차린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들판에서 40수짜리 은화 한 닢이 열 살 아이의 손을 떠났다. 그 동전은 장발장의 손에 남았고,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교는 그날 아침 장발장에게 다음에는 정원으로 오지 말고 길 쪽 문으로 오라고 했다. 그 문은 여전히 걸쇠로만 닫혀 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문을 열어 둔 것을 알고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진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