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스는 서랍장 위에서 그 장면을 다 보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처녀에게만 붙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눈과 이마와 걸음걸이를 알았지만 목소리는 몰랐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면 목숨 열 해라도 내줄 것 같았는데, 종드레트의 요란한 하소연이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그녀가 나가자 그에게는 생각이 하나뿐이었다. 따라가자. 어디 사는지 알기 전에는 놓치지 말자. 그는 서랍장에서 뛰어내려 모자를 집었다가 문고리 앞에서 멈칫했다. 복도는 길고 계단은 가파르고 종드레트는 말이 많다. 르블랑 씨가 돌아보다 이 집에서 그를 보기라도 하면, 놀라 다시 달아날 것이다.
그래도 그는 나섰다. 복도에도 계단에도 아무도 없었고, 대로로 내려가자 마차 한 대가 프티방키에 거리 모퉁이를 돌아 파리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뛰어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때 기적처럼 빈 삯마차가 지나갔다. 마리우스는 손을 들고 시간제로 가자고 외쳤다.
모자라는 24수
넥타이도 없이 단추 떨어진 작업복에 셔츠 가슴께가 찢어진 청년을 마부가 훑어본다. 마부는 왼손을 내밀어 엄지로 집게손가락을 비볐다.
미리 내시오.
마리우스는 주머니에 16수밖에 없다는 것을 떠올린다. 얼마냐고 묻자 마부는 40수라고 했다.
돌아와서 드리겠소.
마부는 대꾸 대신 휘파람을 불며 말에 채찍질을 했다.
24수가 모자라 그는 기쁨도 사랑도 다 놓쳤다. 그는 아침에 그 가엾은 처녀에게 준 5프랑을 쓰라리게 떠올렸다. 그 돈만 있었다면 그녀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는 낙담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르블랑 씨가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한 말은 넋을 잃고 있느라 거의 듣지 못했다. 계단을 오르려는데 대로 건너편 빈 담 밑에서, 자선가의 갈색 외투를 걸친 종드레트가 수상한 사내 하나와 눈발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쿠르페락이 언젠가 가리켜 준, 밤에 돌아다닌다는 위험한 사내 팡쇼와 닮았다. 마리우스는 그것을 거의 눈여겨보지 않았다.
무엇을 주실 건데요
다락방에 들어서려는데 옆방 큰딸이 따라와 문을 잡았다. 그의 5프랑을 가져간 그녀가 미웠다.
또 당신이오? 원하는 게 뭐요?
그녀는 아침처럼 대담하지 않았다. 복도 그늘에서 생각에 잠긴 눈을 들고 말했다.
마리우스 씨, 슬퍼 보여요, 무슨 일이에요? 아침에 저한테 먹을 걸 주셨으니 이제 무슨 일인지 말해 주세요. 비밀은 안 물어볼게요.
편지 나르고, 집집이 묻고 다니고, 주소 찾고, 사람 뒤 밟는 거라면 제가 잘해요. 저를 써 주세요.
마리우스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떨어지는 사람은 어떤 나뭇가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다가가 말했다. 이봐…
아, 그렇게 반말로 해 주세요! 그게 좋아요.
네가 아까 그 노신사와 딸을 여기 데려왔지. 그 사람들 주소를 아니?
몰라요.
찾아 줘.
그녀의 눈이 기쁨으로 빛났다가 이내 어두워졌다. 그걸 원하시는 거예요, 그분들을 아세요? 마리우스가 모른다고 하자 그녀가 재빨리 말했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를 모르는데 알고 싶으신 거군요.
마리우스가 그 노인과 딸의 주소라고 고쳐 말하자 그녀는 그를 빤히 보았다.
무엇을 주실 건데요?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주소를 찾아 드릴게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문을 홱 닫았다.
벽 너머에서 들린 말
마리우스가 침대에 머리를 묻고 있는데 옆방에서 종드레트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어. 내가 알아봤다니까.
누구를 알아봤다는 걸까, 르블랑 씨를? 마리우스는 서랍장 위로 뛰어올라 다시 구멍에 눈을 댔다.
아내와 딸들은 자선가가 가져온 꾸러미에서 털양말과 털옷을 꺼내 입고 있었다. 종드레트는 큰 걸음으로 방 안을 오갔다. 여덟 해 전 일이지만 알아봤다고, 키도 얼굴도 거의 그대로이고 목소리도 같다고 했다. 그는 딸들을 내보내며 큰딸에게 다섯 시에 둘 다 꼭 돌아오라고, 할 일이 있다고 일렀다.
아내와 단둘이 남자 그는 팔짱을 끼고 그 아가씨 말이야, 하고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아내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크게 덧붙였다. 그 애야!
그 애? 아내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증오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내 딸들은 맨발에 입을 옷도 없는데 비단 망토에 벨벳 모자라니! 그때 그 애는 못생겼는데 이 애는 예쁘잖아, 그럴 리 없어! 남편이 틀림없다고 하자 아내는 그 아가씨의 배를 나막신으로 걷어차 주고 싶다고 소리쳤다.
남편은 아내 앞에 서서 낮게 말했다. 이제 내 팔자가 폈어.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하는 동네에서 사는 것도 이제 지겹다고 그는 말했다. 그 부자가 오늘 저녁 여섯 시에 60프랑을 들고 온다. 그 시각이면 옆방 청년은 저녁 먹으러 나가 있고 집 관리하는 노파도 설거지 일을 나간다. 딸들은 망을 보고, 아내는 거들면 된다. 그가 순순히 내놓겠지.
안 내놓으면요?
종드레트가 음산한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그를 처리하지.
그러고는 웃었다. 마리우스는 그가 웃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차갑고 부드러운 그 웃음이 소름 끼쳤다.
종드레트는 낡은 모자를 쓰며, 그 노인이 자기를 못 알아본 게 다행이라고, 수염 덕분이라고 웃었다. 그는 자선가가 두고 간 외투를 여미며 이게 없었으면 나가지도 못했을 거라고 했다. 나가다 말고 돌아와 아내에게 5프랑짜리 은화를 던져 주며 숯 화로를 하나 사 두라고 했다. 나머지는 쓰지 말라고, 자기도 철물점에서 살 것이 있다고 했다. 생메다르 성당에서 한 시를 쳤다.
그 돈이 없었다면
마리우스는 꿈꾸는 사람이었지만 굳센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 그가 벽 너머로 들여다본 것은 강도들의 소굴이었다.
그는 그 노인과 딸이 누구인지 여전히 몰랐다. 아는 것은 종드레트가 그들을 안다는 것, 그리고 오늘 저녁 무서운 함정이 놓인다는 것뿐이었다. 그 노인은 틀림없이, 딸도 아마 위험했다.
알려 줄 길은 없었다. 그들의 주소를 몰랐다. 여섯 시에 문 앞에서 노인을 기다렸다가 알려 줄까. 하지만 외딴 곳이라 종드레트의 패거리가 그를 보면 그를 붙잡거나 떼어 놓을 테고, 노인은 끝장이다.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그나마 나은 웃옷을 입고 목에 머플러를 두르고, 이끼 위를 맨발로 걷듯 소리 없이 집을 나섰다. 프티방키에 거리의 낮은 담 너머에서 눈 속에 쪼그려 앉은 두 사내가 낮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파트롱미네트와 함께라면 실패할 리 없다고, 한 사람 앞에 500프랑씩이고 잘못돼 봐야 다섯 해, 여섯 해, 길어야 열 해라고 했다.
동네 가게에서 길을 물으니 경찰 분서는 퐁투아즈 거리 14번지라고 했다. 가는 길에 그는 2수짜리 빵을 사 먹었다. 저녁은 못 먹을 것 같았다. 걸으면서 그는 아침 일을 고쳐 생각했다. 그 처녀에게 5프랑을 주지 않았다면 그는 마차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테고, 그 노인은 그대로 함정에 걸렸을 것이다.
퐁투아즈 거리 14번지
분서장은 자리에 없었고, 대신 감독관이 있다고 했다. 마리우스가 안내받은 방에는 키 큰 남자가 난로에 기대 서서 깃이 셋 달린 큰 외투 자락을 두 손으로 걷어 올리고 있었다. 네모난 얼굴에 얇고 단단한 입, 희끗희끗한 구레나룻. 주머니를 뒤집어 볼 것 같은 눈이었다.
무슨 일이오? 남자는 선생이라는 말도 붙이지 않았다.
마리우스는 이야기했다. 얼굴만 아는 어떤 사람이 오늘 저녁 함정에 걸려들 것이다. 자기는 변호사 마리우스 퐁메르시이고, 그 소굴 옆방에 살아서 벽 너머로 계획을 다 들었다. 꾸민 사람은 종드레트라는 자이고, 팡쇼라는 자를 포함해 한패가 있을 것이며, 그의 딸들이 망을 볼 것이다. 노인의 이름조차 몰라 미리 알릴 방법이 없다. 시각은 저녁 여섯 시, 오피탈 대로에서 가장 외딴 50-52번지다.
그 번지를 듣자 감독관이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 방이로군?
맞습니다. 그 집을 아십니까?
감독관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장화 뒤축을 난로에 대며 답했다. 아는 셈이지. 그러고는 마리우스보다 자기 넥타이에 대고 하듯 중얼거렸다. 파트롱미네트가 좀 끼어 있겠군.
마리우스가 담 너머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자, 감독관은 한 사내는 브뤼종, 다른 사내는 되밀리아르라고도 불리는 드미리아르일 거라고 했다. 그는 마리우스에게 덩치 큰 사내나 예쁘장한 꼬마 멋쟁이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그 집은 안에 숨을 데가 없어서 경찰이 들어가 있으면 다들 눈치채고 공연을 취소할 거라고 했다. 그는 그 공연을 끝까지 보고 싶어 했다.
그는 마리우스를 빤히 보며 물었다.
겁나지 않겠소?
무엇이 말입니까?
그자들이.
당신보다는 덜 겁납니다. 마리우스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 경찰관이 끝내 선생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것을 알아챈 참이었다.
감독관은 그를 더 빤히 보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은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처럼 말하는군.
“Le courage ne craint pas le crime, et l’honnêteté ne craint pas l’autorité.” 용기는 범죄를 겁내지 않고, 정직은 권력을 겁내지 않지. (3부 8권 14장)
너무 일찍 쏘지 마시오
감독관은 세입자마다 밤에 쓰는 문 열쇠가 있지 않느냐고 묻고 그것을 받아 갔다. 마리우스가 사람을 많이 데려오라고 하자, 감독관은 시골 아카데미 회원에게 운율을 훈수받은 볼테르 같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고는 커다란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어 작은 강철 권총 두 자루를 꺼냈다.
이걸 받으시오. 집에 돌아가 방에 숨어서 나간 줄 알게 하시오. 두 발씩 장전돼 있소.
벽에 구멍이 있다고 했지. 그자들이 오면 조금 내버려 두었다가, 때가 됐다 싶으면 천장이든 어디든 한 발 쏘시오. 나머지는 내가 맡겠소.
너무 일찍 쏘면 안 되오. 범행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시오. 당신은 변호사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거요.
마리우스가 권총을 웃옷 옆주머니에 넣자 감독관은 불룩해서 티가 난다며 바지 주머니에 넣으라고 했다. 몇 시냐고 묻더니, 두 시 반이라고, 여섯 시면 시간은 되지만 겨우 된다고 했다. 마리우스가 문고리를 잡자 감독관이 소리쳤다.
그때까지 내가 필요하면 이리 오거나 사람을 보내시오. 감독관 자베르를 찾으시오.
철물점의 끌
세 시쯤 무프타르 거리를 지나던 쿠르페락과 보쉬에가 마리우스를 보았다. 보쉬에가 부르려 하자 쿠르페락이 말렸다. 누군가를 따라가는 얼굴이라는 것이다. 여자를 따라가는 줄 알았는데 앞에 가는 사람은 너무 큰 새 외투에 흙투성이 누더기 바지를 입은 회색 수염의 남자였다. 남자를 따라가는 남자를 따라갈 수는 없다며 둘은 돌아섰다.
마리우스는 종드레트를 뒤밟고 있었다. 종드레트는 무프타르 거리를 따라가다 피에르롱바르 거리 모퉁이의 철물점에 들러, 흰 나무 자루가 달린 큰 끌을 하나 사서 외투 속에 감추었다. 그러고는 프티방키에 거리의 낮은 담을 넘어 사라졌다. 담 너머 빈터는 망한 마차 대여점의 뒷마당과 이어져 있었다.
마리우스는 서둘러 돌아왔다. 열쇠를 감독관에게 주었으니 노파가 문을 잠그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달이 살페트리에르의 둥근 지붕 뒤에서 붉게 떠올랐다. 그는 발끝으로 복도를 지나다 빈방 하나에서 꼼짝 않는 남자 머리 넷을 언뜻 보았다. 그는 들키지 않고 방에 들어갔다. 곧 노파가 나가며 대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화로 속의 끌
다섯 시 반쯤이었다. 마리우스는 장화를 벗어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옆방 구멍이 핏빛으로 붉게 빛났다. 종드레트가 돌아오자 식구들이 맞았다. 쥐덫은 열렸고 고양이들은 와 있다고 그가 낮게 말했다. 문 경첩에 기름을 발라 소리가 안 나게 했느냐고도 물었다.
그는 큰딸에게 옆방에 아무도 없는지 보고 오라고 했다. 마리우스는 기어서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촛불을 든 큰딸이 들어와 침대 쪽으로 곧장 걸어왔다. 그러나 그녀가 간 곳은 침대 곁 벽에 걸린 거울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사랑이 한 주밖에 안 갔다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버지가 고함치자 그녀는 침대 밑도 다 보았는데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고 나갔다. 이윽고 두 딸이 맨발로 눈 속에 망을 보러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시문 쪽, 하나는 프티방키에 거리 모퉁이였다.
마리우스는 다시 구멍에 눈을 댔다. 큰 양철 화로에 숯이 벌겋게 타고 있었고, 그 속에 아까 산 끌이 꽂혀 달아오르고 있었다. 문 가까이 구석에는 쇠붙이 더미와 밧줄 더미가 있었다. 밧줄은 나무 가로대가 달린 줄사다리였다. 종드레트는 화로를 낡은 칸막이로 가렸다. 그는 탁자 서랍에서 긴 부엌칼을 꺼내 손톱에 날을 대 보고 다시 넣었다.
마리우스도 오른쪽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공이를 당겼다. 작고 맑은 소리가 나자 종드레트가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거기 누구야?
그는 잠깐 귀를 기울이더니 웃었다. 바보 같긴, 벽이 삐걱거린 거로군.
종드레트의 아내는 의자가 둘 있어야겠다는 남편의 말에, 옆방 걸 가져오겠다며 마리우스의 방으로 왔다. 서랍장 위의 마리우스는 내려갈 틈이 없었다. 달빛이 두 그림자 사이로 들어왔고, 그중 한 그림자가 마리우스가 선 벽을 덮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지 못하고 그가 가진 의자 두 개를 다 가져갔다.
여섯 시
생메다르 성당이 여섯 시를 쳤다. 종드레트는 한 번 칠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번째 종이 울리자 그는 손가락으로 촛불 심지를 잘랐다. 그가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선생님. 들어오십시오, 나의 은인이여.
르블랑 씨, 곧 장발장이 들어섰다. 그는 탁자에 4루이를 놓았다. 파방투 씨, 이건 방세와 급한 데 쓰시오. 그다음 일은 보아 가며 합시다. 종드레트의 아내가 마차를 돌려보냈다. 아침부터 내린 눈이 두꺼워 마차가 오는 소리도 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르블랑 씨가 의자에 앉자 종드레트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벽 너머의 마리우스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언제든 저자를 잡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르블랑 씨가 다친 아이를 묻자 종드레트는 큰딸이 병원에 데려갔다고 했다. 아내를 보고 건강해 보인다고 하자 종드레트는 다 죽어 간다고 했다. 아내는 문과 노인 사이를 지키듯 서 있었다. 아내가 남편을 종드레트 씨라고 부르자 르블랑 씨가 파방투 씨가 아니냐고 물었고, 종드레트는 파방투가 예명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는 동안 남자 하나가 소리 없이 들어와 침상에 걸터앉았다. 셔츠도 없이 팔을 드러냈고 얼굴은 검댕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웃이라고 종드레트가 말했다. 또 하나가 들어왔다. 종드레트는 집 사람들이라고 했다.
1000에퀴짜리 그림
종드레트는 벽에 뒤집어 세워 둔 나무판을 돌렸다. 가난해서 내놓지만 두 딸만큼 아끼는 그림이라고 했다. 장터 그림처럼 조잡한 색으로, 무언가 큰 인물 하나를 그린 것 같았다.
르블랑 씨가 다시 돌아보니 남자가 넷으로 늘어 있었다. 셋은 침상에 앉고 하나는 문설주에 기대 섰는데, 넷 다 팔을 드러내고 얼굴을 검게 칠했다. 하나는 흰 머리의 늙은이였는데 눈을 감고 자는 것 같았다. 종드레트는 숯 일을 하는 굴뚝 청소부들이라고, 신경 쓰지 말고 그림이나 사 달라고 했다.
르블랑 씨는 종드레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건 술집 간판 같군요, 3프랑은 되겠소.
종드레트가 부드럽게 답했다. 지갑 가지고 계시지요, 1000에퀴면 되겠습니다.
르블랑 씨는 일어나 벽에 등을 대고 방을 둘러보았다. 왼쪽 창가에 종드레트, 오른쪽 문 쪽에 아내와 네 남자가 있었다. 종드레트는 딸들에게 상자 만드는 일을 가르치려다 못 했다고, 강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의 눈은 르블랑 씨가 아니라 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흐린 눈에 불이 붙었다. 작은 사내가 벌떡 일어나 르블랑 씨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외쳤다.
그런 건 다 상관없어! 나를 알아보겠어?
그 이름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검은 종이 가면을 쓴 남자 셋이 들어섰다. 하나는 쇠를 박은 몽둥이를, 하나는 소 잡는 도끼를, 하나는 감옥 문에서 훔친 듯한 큰 열쇠를 들었다. 종드레트가 몽둥이 든 사내에게 몇 마디 물었다. 준비는 다 됐느냐, 아래에 마차가 있느냐, 말 둘을 맨 수레는 정한 곳에서 기다리느냐.
르블랑 씨는 하얗게 질렸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는 탁자를 방패 삼아 의자 등받이에 억센 주먹을 얹었다. 방금까지 선한 노인이던 사람이 갑자기 씨름꾼처럼 보였다. 굴뚝 청소부라던 남자 셋은 쇠붙이 더미에서 큰 가위와 지렛대와 망치를 집어 들고 말없이 문을 막아섰다.
마리우스는 오른손을 천장 쪽으로 들어 올렸다. 몇 초 안에 쏠 때가 올 것이다.
종드레트가 다시 낮고 무서운 웃음과 함께 물었다. 정말 나를 못 알아보겠어?
르블랑 씨가 그를 마주 보며 답했다. 모르겠소.
종드레트는 탁자로 다가와 촛불 위로 몸을 숙이고, 팔짱을 낀 채 모난 턱을 르블랑 씨의 얼굴에 바짝 들이댔다.
나는 파방투도 아니고 종드레트도 아니야. 내 이름은 테나르디에다, 몽페르메이의 여관 주인이야! 잘 들어, 테나르디에! 이제 알아보겠어?
르블랑 씨의 이마에 아주 옅은 붉은 기가 스쳤다. 그는 목소리를 떨지도 높이지도 않고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마리우스는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테나르디에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온몸을 떨며 벽에 기댔다. 칼날이 가슴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신호를 쏘려고 들어 올린 오른팔이 천천히 내려갔다. 잘 들어, 테나르디에, 하고 그 이름이 두 번째로 울렸을 때, 힘이 빠진 손가락에서 권총이 떨어졌다.
오늘, 벽 너머에서 들은 이름
이날 아침 마리우스는 가진 돈 5프랑을 옆방 처녀에게 주었다. 그 때문에 마차를 놓쳤고, 마차를 놓친 덕분에 벽 너머의 계획을 들었다.
오후에 그는 경찰 분서로 가서 그 계획을 알렸다. 감독관은 그에게 권총 두 자루와 한 가지 당부를 주었다. 너무 일찍 쏘지 말 것. 범행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릴 것.
그 감독관의 이름은 자베르였다. 마리우스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여섯 시가 지나 그가 기다리던 때가 왔을 때, 옆방 남자가 자기 이름을 댔다. 마리우스가 네 해 동안 찾아다닌 이름이었다.
오래 찾던 사람을 전혀 뜻밖의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