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디뉴의 주교는 일흔다섯 살쯤 된 미리엘이라는 노인이다.
젊어서는 사교계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혁명이 나자 이탈리아로 떠났고, 거기서 아내를 잃었으며, 돌아왔을 때는 사제가 되어 있었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교가 된 사정도 우연에 가깝다. 시골 본당 신부로 파리에 일을 보러 갔다가 대기실에서 황제와 마주쳤다. 나폴레옹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이 노인은 누구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폐하께서는 한 늙은이를 보고 계시고 저는 한 위인을 보고 있으니, 둘 다 얻는 것이 있겠습니다. 얼마 뒤 그는 자기가 디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다.
병원과 바꾼 집
디뉴의 주교관은 돌로 지은 넓고 훌륭한 저택이다. 바로 옆에 붙은 병원은 좁고 낮은 한 층짜리 건물이다.
도착하고 사흘째 되는 날, 주교는 병원을 둘러보고 원장을 자기 집으로 부른다. 지금 환자가 몇이냐고 묻자 스물여섯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침대가 서로 붙어 있다고, 방이 좁아 공기가 잘 안 통한다고 원장은 덧붙인다.
주교는 자기 집의 큰 식당을 둘러본다. 이 방 하나에 침대 스무 개는 들어가겠다고 그는 말한다.
이튿날 스물여섯 명의 가난한 환자가 주교관으로 옮겨 오고, 주교는 병원 건물로 옮겨 간다.
나라에서 받는 봉급 가운데 그가 자기 살림에 쓰는 몫은 아주 작다. 나머지는 감옥의 죄수들, 가난한 산모들 앞으로 적힌 자선 목록에 차례로 나간다. 마차를 굴리라고 나오는 돈마저 병원 환자들의 국물값과 고아와 산모의 몫으로 나눠 보낸다.
빗장을 떼어 낸 문
그 집에는 열쇠로 잠기는 문이 하나도 없다.
광장으로 바로 통하는 식당 문은 원래 감옥 문 못지않게 쇠붙이가 겹겹이 달린 문이었다. 주교가 그것을 전부 떼어 낸 뒤로 그 문을 붙들어 두는 것은 밤이나 낮이나 걸쇠 하나뿐이고, 길 가던 사람 누구라도 떠밀면 열린다.
함께 사는 두 여자는 처음에 그 문 때문에 몹시 불안해했다. 주교의 누이 바티스틴과, 살림을 맡은 노부인 마글루아르다. 주교는 그들에게 이렇게만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각자 방에 빗장을 달아 두시오.
바티스틴은 오빠를 따랐다. 마글루아르 부인은 따르는 척하면서도 가끔 겁을 냈다.
주교가 성경 여백에 적어 둔 메모가 있다. 의사의 문은 닫혀서는 안 되고, 사제의 문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자리에는 이런 말도 적혀 있다. 하룻밤 묵어 가기를 청하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말라고, 이름이 짐이 되는 사람일수록 머물 곳이 필요하다고.
이웃 본당의 신부 하나가 넌지시 걱정을 전한 적이 있다. 밤낮으로 문을 열어 두면 언젠가 험한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주교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라틴어로 시편 한 구절을 읊었다. 주님이 지켜 주지 않으시면 지키는 자의 밤샘도 헛되다. 그러고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골짜기 끝에 혼자 사는 노인
디뉴 근처 외딴 골짜기에 혼자 사는 노인이 있다.
혁명 때 국민공회 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도시 사람들은 그를 G.라고만 부르고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몸서리를 친다. 왕의 사형에 찬성표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그랬던 사람이라고, 하느님도 믿지 않는 괴물이라고 한다. 그가 사는 골짜기로 가는 오솔길은 풀에 덮여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곳을 사형 집행인의 집처럼 말한다.
주교는 가끔 그 골짜기 쪽 나무숲을 바라보며 저기 혼자인 영혼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속으로는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떠올리자마자 이상하고 거북한 것으로 바뀌었다. 주교 자신도 그 노인에게 도시 사람들과 같은 꺼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몇 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가 되돌아왔다.
어느 날 소문이 돈다. 노인이 마비로 죽어 가고 있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교는 지팡이를 들고 길을 나선다.
해가 지평선에 닿을 무렵 그는 골짜기에 이른다. 덤불 뒤에 낮고 작은 오두막이 있고, 그 앞 바퀴 달린 의자에 머리가 하얀 노인이 앉아 햇빛을 보며 웃고 있다.
노인은 놀란다. 여기 온 뒤로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은 처음이라고 한다.
주교가 이름을 대자 노인은 백성들이 비앵브뉘 주교라고 부르는 사람이 당신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그럼 당신이 내 주교냐고 반쯤 웃으며 되묻고는 손을 내민다. 주교는 그 손을 잡지 않는다.
노인은 세 시간 뒤에 죽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어제는 발만 차가웠는데 오늘은 무릎까지, 지금은 허리까지 올라왔고, 그것이 심장에 닿으면 멈출 것이라고.
축복을 청한 쪽
주교는 노인이 자기를 주교님이라 부르지 않는 것이 조금 거슬린다. 차라리 시민이라고 맞받아 부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는 돌 위에 앉아 거의 꾸짖는 투로 말을 꺼낸다. 축하하오, 당신은 아직도 왕의 죽음에 표를 던지지 않았구려. 아직도라는 말에 가시가 박혀 있다.
노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자기는 폭군의 끝에 표를 던졌다고 그는 답한다. 사람에게는 무지라는 폭군이 있고, 자기가 끝내려 한 것은 그것이라고. 루이 16세를 두고는 반대했다고,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고 한다.
주교는 혁명이 저지른 피를 꺼낸다. 1793년이라는 해를 꺼내고, 탑에 갇혀 죽은 어린 왕자를 꺼낸다.
노인은 주교의 팔을 붙잡는다. 누구를 위해 우는 것이냐고 묻는다. 죄 없는 아이라면 함께 울겠다고, 다만 도둑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광장에 매달려 죽은 아이도 그 아이만큼 죄가 없었다고. 왕의 아이들을 위해 함께 울 테니, 당신도 백성의 아이들을 위해 나와 함께 울어 달라고 한다.
나는 모두를 위해 운다고 주교가 답한다. 똑같이 말이냐고 노인이 되받는다. 저울이 기울어야 한다면 백성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고, 그쪽이 더 오래 고통받았으니까.
그러고는 노인이 터지듯 묻는다. 당신은 누구냐고. 금박 마차를 타고 하인을 앞뒤에 거느리고 봉급을 받는 주교라는 것은 알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도 알 수 없다고.
주교는 고개를 숙이고 라틴어로 짧게 답한다. 나는 벌레요.
마차 탄 벌레로군, 하고 노인이 중얼거린다. 그러다 이마를 짚고 사과한다. 당신은 내 집에 온 손님인데 당신의 재산을 논쟁의 무기로 삼은 것은 잘못이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한다.
둘은 한동안 더 다툰다. 노인의 숨이 점점 가빠진다. 주교가 마지막으로 남겨 둔 말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가 인류를 이끌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천천히 차오른다. 그는 거의 혼잣말처럼 이상이여, 너만이 있다고 떨리는 소리로 말하더니, 손가락 하나를 하늘로 들고 또렷한 목소리로 잇는다. 무한한 것에도 내가 있고, 그 나가 신이라고.
해가 진다. 주교는 그 차갑게 식어 가는 손을 잡고 몸을 숙여, 이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하자고 말한다.
노인이 눈을 뜬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삶을 이야기한다. 예순에 나라의 부름을 받아 나섰고, 잘못된 것을 고치려 싸웠고, 나라가 침략당하자 가슴을 내밀었다고. 국고에 금이 넘쳐 벽이 갈라질 지경일 때도 이십이 수짜리 밥을 먹었고, 원수였던 수도원을 지켜 준 적도 있다고. 그 뒤로는 쫓기고 욕먹고 저주받았으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면서 미움 속의 외로움을 받아들였다고.
이제 여든여섯이고 곧 죽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고는 묻는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청하러 왔느냐고.
당신의 축복을 청하오, 하고 주교가 답한다.
그리고 무릎을 꿇는다.
주교가 고개를 들었을 때 노인은 숨을 거둔 뒤였다.
그날 밤 주교는 집에 돌아와 밤새 기도한다. 이튿날 그 노인 이야기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을 가리키기만 한다. 도시에서는 주교가 그런 자의 머리맡에 간 것을 두고 한동안 말이 많다.
노란 통행증이 먼저 닿은 저녁
1815년 10월 초, 해가 지기 한 시간쯤 전에 한 남자가 걸어서 디뉴로 들어온다.
마흔예닐곱쯤 된 다부진 남자다. 가죽 챙 모자를 눌러쓰고, 다 해진 작업복에 새것 같은 군용 배낭을 메고, 옹이투성이 지팡이를 들었다. 머리는 짧게 깎였고 수염은 길다. 아무도 그를 모른다.
그는 시청에 들러 무언가를 보이고 나온 뒤 이 도시에서 제일 좋은 여관으로 간다. 부엌에서는 마부 열두 명의 저녁이 익고 있다. 먹고 자고 싶다고 하자 여관 주인은 돈만 내면 어렵지 않다고 한다. 남자가 가죽 지갑을 보인다.
그런데 주인은 그가 불을 쬐는 동안 쪽지를 써서 시청으로 사환을 보낸다. 답장을 읽은 주인은 방이 없다고 한다. 마구간도, 다락의 짚단도 안 된다고 한다. 저 음식은 다 예약된 것이라고 한다.
남자가 떠나지 않자 주인이 귓속말을 한다. 당신 이름이 장발장이라는 것도, 당신이 누구인지도 안다고. 나가 달라고.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간다. 다음 선술집에서는 손님 하나가 주인에게 귓속말을 하고, 주인이 그의 어깨를 짚으며 나가라고 한다.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
그는 감옥 문에 달린 종을 당긴다.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하자, 감옥은 여관이 아니니 잡혀 오면 열어 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오고 쪽문이 닫힌다.
불 켜진 창 너머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웃는 가족이 보인다. 그는 유리창을 세 번 두드린다. 문을 연 남편은 돈을 내겠다는 그의 말을 듣다가, 여관 두 곳에서 다 쫓겨났다는 말에 얼굴이 바뀐다. 당신이 그 사람이냐고 묻고는 벽에 걸린 총을 내린다. 물 한 잔만 달라는 부탁에 총알 한 방이라고 답하고, 문에 빗장 두 개를 지르고 덧문까지 닫는다.
정원 구석에 흙벽 움막이 있다. 그는 기어 들어가 짚 위에 눕는다.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난다. 개집이었다. 지팡이를 휘둘러 개를 물리고 나온 그는 길가 돌 위에 주저앉아 소리친다. 나는 개만도 못하구나.
도시 밖 들판까지 걸어갔다가, 낮은 구름 아래 너무 황량한 언덕을 보고 그는 되돌아온다. 성문은 닫혀 있어 무너진 성벽 틈으로 들어온다.
밤 여덟 시쯤, 그는 대성당 앞 광장의 인쇄소 문가 돌 의자에 눕는다.
성당에서 나오던 할머니가 그를 본다. 거기서 뭘 하느냐고 묻자 그는 거칠게 답한다. 보면 모르시오, 자려는 거요. 열아홉 해 동안 나무 매트리스에서 잤으니 오늘은 돌 매트리스라고.
할머니는 지갑에 있던 4수를 그에게 준다. 이 돈으로는 여관에 못 간다고, 자비로라도 재워 줄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는 모든 문을 두드렸고 모든 곳에서 쫓겨났다고 답한다.
할머니가 광장 건너편, 주교관 옆의 작고 낮은 집을 가리킨다.
저 문도 두드려 보았소?
아니오.
두드려 보시오.
빗장 이야기가 나오던 저녁
그날 저녁 주교는 늦게까지 방에서 글을 쓰다가 식당으로 나온다. 식탁에 등잔이 놓였고 벽난로에는 불이 괜찮게 타고 있다.
마글루아르 부인이 상을 차리며 바티스틴에게 열을 올리고 있다. 장을 보러 나갔다가 들은 이야기다. 수상한 떠돌이가 시내에 들어왔고, 여관에서 안 받아 줘서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고. 그러니 오늘 밤만이라도 열쇠장이를 불러 예전 빗장을 다시 달아야 한다고, 아무나 밖에서 걸쇠만 들면 들어오는 문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
바티스틴은 끼어들지 않는다. 오빠가 하는 일은 다 옳다고만 한다.
주교는 불을 쬐며 듣다가 웃는 얼굴로 묻는다. 그래서 우리가 큰 위험에 처했다는 말이오?
마글루아르 부인이 같은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는 중에, 문에서 쾅 하고 세찬 소리가 난다.
들어오시오, 하고 주교가 말한다.
자리를 하나 더
문이 활짝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온다.
배낭을 어깨에 메고 지팡이를 쥔 채, 문을 열어 둔 그대로 한 걸음 들어와 선다. 벽난로 불이 거칠고 지친 얼굴을 비춘다. 마글루아르 부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티스틴은 반쯤 일어섰다가 오빠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차분해진다.
주교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큰 소리로 말한다.
자기 이름은 장발장이고 감옥에서 열아홉 해를 살았다고 한다. 나흘 전에 풀려나 툴롱에서부터 퐁타를리에로 가는 길이고, 오늘 열두 리외를 걸었다고. 노란 통행증을 보여 줬더니 여관에서 쫓겨났고, 감옥도 열어 주지 않았고, 개집의 개마저 자기를 물어 내쫓았다고. 광장의 할머니가 이 집 문을 가리켜 줬다고. 여기는 여관이냐고, 돈은 있다고, 열아홉 해 동안 일해서 번 109프랑 15수가 있으니 내겠다고 한다.
주교가 말한다. 마글루아르 부인, 자리를 하나 더 놓아 주시오.
남자가 다시 말한다. 못 알아들으신 모양인데, 나는 감옥에서 나온 죄수라고. 그러고는 노란 종이를 꺼내 읽는다. 장발장, 석방된 죄수. 감옥에서 열아홉 해. 침입 절도로 다섯 해, 네 번의 탈옥 시도로 열네 해. 매우 위험한 인물.
마글루아르 부인, 하고 주교가 말한다. 골방 침대에 흰 시트를 깔아 주시오.
그러고는 남자에게 돌아선다. 선생, 앉아서 불을 쬐시오. 곧 저녁을 들고, 그동안 잠자리를 마련해 두겠소.
남자의 얼굴이 놀라움과 의심과 기쁨으로 차례로 바뀐다. 나를 내쫓지 않느냐고, 죄수인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느냐고, 다들 저리 가 개야라고만 했다고, 열아홉 해 동안 침대에서 자 본 적이 없다고 더듬더듬 쏟아 낸다. 그러다 묻는다. 여관 주인이시지요?
나는 여기 사는 사제요, 하고 주교가 답한다.
남자가 말하는 동안 주교는 활짝 열린 채로 있던 문을 가서 닫는다.
주교는 손님을 선생이라고 부른다. 밤바람이 차니 춥지 않으냐고 물을 때도, 자리를 불가로 옮겨 주라고 할 때도 그렇게 부른다.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남자의 얼굴이 환해진다.
등잔이 너무 어둡다고 주교가 말하자, 마글루아르 부인이 주교의 방 벽난로 위에서 은촛대 두 개를 가져와 불을 켜 식탁에 놓는다.
남자가 말한다. 신부님은 착하시군요, 나를 깔보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초에 불까지 켜 주시네요,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숨기지도 않았는데.
주교가 그의 손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당신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됐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라고.
“Cette porte ne demande pas à celui qui entre s’il a un nom, mais s’il a une douleur.” 이 문은 들어서는 이에게 이름이 있느냐고 묻지 않소. 아픈 데가 있느냐고 묻지. (1부 2권 3장)
그러니 고마워할 것도 없다고 주교는 덧붙인다. 그리고 당신 이름은 당신이 말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정말이냐고 묻자, 주교가 답한다. 당신 이름은 내 형제라오.
남자는 배가 몹시 고팠는데 이제는 무엇이 고픈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마글루아르 부인이 저녁을 낸다. 물과 기름과 빵과 소금으로 끓인 수프에 돼지비계 조금, 양고기 한 점, 무화과, 생치즈, 큼직한 호밀빵이다. 부인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래 묵힌 포도주 한 병을 더 얹었다.
주교는 늘 그러듯 손님을 자기 오른쪽에 앉히고 직접 수프를 떠 준다. 남자는 허겁지겁 먹는다.
그러다 주교가 말한다. 식탁에 뭔가 빠진 것 같구려.
손님이 오면 은그릇 여섯 벌을 다 꺼내 놓는 것이 이 집의 오랜 버릇이다. 마글루아르 부인은 꼭 필요한 세 벌만 놓았었다. 부인은 말없이 나갔다가 돌아오고, 잠시 뒤 은그릇 세 벌이 세 사람 앞에 가지런히 빛난다.
오늘, 이름을 묻지 않는 문
이 편에는 문이 많이 나온다.
여관 주인의 문, 선술집의 문, 감옥의 쪽문, 총을 내린 가장의 문, 개집의 좁은 입구. 그리고 걸쇠 하나로만 닫힌 주교의 문.
닫힌 문들 앞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었다. 여관 주인은 시청에 물어 답을 받은 뒤에 문을 닫았다. 아이 둘을 둔 가장은 여관 두 곳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총을 내렸다. 감옥 문지기는 규칙을 그대로 읊었다.
주교의 문만 다른 쪽으로 열렸다.
그가 정해진 대로 하지 않은 것은 그날 밤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도시가 괴물이라 부르던 노인의 골짜기로 갔고, 꾸짖으러 간 사람이 무릎을 꿇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기 집 문 앞에 선 사람에게는 무엇을 했는지 아예 묻지 않았다.
빗장을 떼어 낸 것은 주교 혼자 정한 일이다. 그런데 그 문 옆에서 밤마다 자는 사람은 셋이다. 마글루아르 부인은 바로 그날 저녁에도 열쇠장이를 부르자고 했고, 바티스틴은 오빠가 하는 일은 옳다고만 했다.
이 시리즈는 마흔 편 동안 이런 순간을 따라간다. 한쪽에는 규칙이 있고 한쪽에는 눈앞의 사람이 있다. 누군가 하나를 고르고, 그 값을 누군가가 치른다.
누군가를 어떤 이름으로 불렀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이 바뀌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