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 탈무드의 이야기 원전입니다. 한국에 흔히 도는 유대 우화 모음집이 아닙니다.
랍비들이 수백 년 동안 주고받은 논의를 모았습니다. 대부분은 법을 따지는 토론이고, 그 사이사이에 아가다라고 부르는 이야기가 끼어 있습니다.
히브리어·아람어 원문 한 줄과 읽는 소리, 직접 옮긴 우리말, 출처(트락타테와 쪽)를 나란히 싣습니다.
정답 대신 질문을 남긴
이천 년의 책
배움 · 논쟁 · 정의 · 성품과 겸손 · 말 · 끝과 시작 · 자비. 일곱 가지 국면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판단력을 묻습니다.
이야기가 끝나면 답을 주지 않고, 두 입장을 세워 다시 묻는다.
문장은 초등 고학년도 혼자 읽게 쓰고, 생각의 깊이는 어른에 맞춥니다. 부모와 아이가 한 편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탈무드는 「배움」이라는 뜻입니다. 3세기 초에 구전 율법을 글로 정리한 미쉬나와, 그것을 두고 몇 세기 동안 이어진 토론 게마라가 합쳐진 책입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5~6세기에 지금의 이라크 땅에서 모양을 갖췄습니다.
토론의 대부분은 법(할라카)을 따집니다. 그 사이에 섞인 인물 이야기와 일화가 아가다이고, 이 시리즈가 읽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교훈이 아니라 질문으로 끝납니다. 원전이 원래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각 부의 첫 편과 정리편, 모두 여덟 편이 무료로 열려 있습니다. 편 번호가 튀는 것(36~40)은 뒤에 보강한 편을 제 부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화덕이 정결한가 부정한가. 랍비 엘리에제르만 정결하다 했고, 나머지가 모두 반대했다.
하늘의 목소리까지 엘리에제르가 옳다고 하자, 랍비 여호수아가 일어나 이 구절을 외쳤다. 토라는 이미 시나이에서 사람에게 주어졌으니, 이제 해석은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다수로 정한다는 뜻이었다.
뒷날 누군가 예언자 엘리야를 만나 그때 하늘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엘리야가 답했다. 하늘은 웃으며 말했다고. נִצְחוּנִי בָּנַי 내 아이들이 나를 이겼구나.
랍비 이르메야가 풀었다. 토라에 이미 「다수를 따르라」(אַחֲרֵי רַבִּים)고 적혀 있으니, 하늘의 목소리에 기대지 않는다고.
엘리에제르가 정결하다고 판정해 온 물건을 사람들이 모두 가져와 불에 태웠다. 이긴 쪽의 결정은 그만큼 무거웠다.
랍비들은 그날 엘리에제르를 공동체에서 내쳤다. 이긴 쪽이 치른 값까지 원전은 적어 둔다.
기적도 다수를 이기지 못한다면, 다수는 언제나 옳은가.
07 힐렐과 샴마이 · 09 아카비아 · 36 칼을 만들던 사람
그는 먼저 샴마이에게 갔다. 샴마이는 손에 든 건축용 자로 그를 밀어냈다. 그다음 힐렐에게 갔다.
나무를 지고 팔던 날품팔이였다. 학당 문지기에게 낼 돈이 없던 날, 지붕 창에 엎드려 눈 속에서 수업을 들었다(01편).
힐렐은 화내지 않고 이 한 문장을 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것이 토라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 풀이다. 이제 가서 배우라. 짧은 답이 끝이 아니라 배움의 입구가 된다.
글로 적힌 토라만 받고 입으로 전한 토라는 못 믿겠다. 힐렐은 첫날 글자를 차례로, 다음 날 거꾸로 가르쳐 스승의 말을 믿어야 배울 수 있음을 보였다.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전부를 가르쳐 달라. 힐렐은 위의 한 문장을 주었다.
대제사장이 되고 싶다. 힐렐은 거절하지 않고 먼저 배우게 했고, 그는 배우다 스스로 알아차렸다.
뒷날 셋이 만나 말했다. 샴마이의 조급함은 우리를 밀어냈고, 힐렐의 온유함은 우리를 들였다.
두 학파는 삼 년을 다퉜다. 하늘의 목소리는 둘 다 살아 있는 말씀이라 했고, 법은 힐렐 쪽을 따르게 했다. 이유는 그들이 온화했고 상대 학파의 말을 먼저 가르쳤기 때문이다(에루빈 13b).
잔치를 연 주인이 친구 카미차를 부르라 했는데, 하인은 원수 바르 카미차를 데려왔다.
내 음식값을 내겠다, 절반을 내겠다, 잔치 전부를 내겠다. 주인은 다 거절하고 손님 앞에서 그를 끌어냈다.
그 자리에 랍비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동의로 여기고 로마 황제에게 모함을 꾸몄다.
제물을 두고 랍비들이 규정을 따지며 결정을 미뤘다. 그 망설임 끝에 성전이 불탔다고 원전은 적는다.
원전은 성전이 무너진 까닭을 적군이나 신의 뜻에서 찾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모욕, 그것을 본 사람들의 침묵, 규정을 따지다 놓친 결단이라는 사람 사이의 일에서 찾습니다.
모욕을 본 사람이 말리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12 나훔의 말버릇 · 13 자선이 산 시간 · 14 얼굴을 감춘 기부 · 15 규정 밖의 몫
호니가 캐롭나무를 심는 노인에게 물었다. 칠십 년이 지나야 열매가 열리는데 왜 심습니까.
호니는 그 자리에서 잠들어 칠십 년 뒤에 깼다. 노인의 손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있었다.
호니는 10편 「원 안에 선 사람」에서 땅에 원을 그리고 비가 올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하늘에 버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잠에서 깬 호니는 학당으로 갔다. 자기가 호니라고 밝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그를 예전처럼 대접하지도 않았다. 그는 슬퍼하다 죽음을 청했다. 원전은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하던 말을 옮겨 적는다.
אוֹ חַבְרוּתָא אוֹ מִיתוּתָא
오 하브루타 오 미투타
함께 배울 짝이 없으면, 죽음이다.
하베르(동무)에서 나온 말로, 둘이 짝을 지어 묻고 답하며 배우는 방식이다. 이 시리즈의 2단계가 이 방식이다.
열매를 못 볼 나무를 심는 일과, 말 섞을 사람이 없는 삶. 둘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27 야브네를 청하다 · 28 파르데스 · 39 폐허에서 웃은 사람 · 40 아키바의 최후
시장에서 한 랍비가 예언자 엘리야에게 물었다. 여기에 다음 세상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까. 엘리야는 학자도 사제도 아닌 어릿광대 둘을 가리켰다. 그들은 슬픈 사람을 웃기고, 다투는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 화해시키는 일을 한다고 답했다.
엘리야가 먼저 가리킨 사람은 감옥의 간수였다. 검은 신을 신어 신분을 숨기고, 갇힌 사람들 가운데 남녀를 따로 두어 여인들을 지켰다. 다가올 위험을 들으면 랍비들에게 미리 알렸다.
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 경건한 학문보다 앞자리에 선다.
남 앞에서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것은 피를 흘리게 하는 것과 같다. 얼굴의 붉은빛이 빠져 하얘지기 때문이다(바바 메치아 58b).
뒷말(라숀 하라)은 말한 사람, 들은 사람, 말의 대상 셋을 죽인다(아라킨 15b).
평화를 위해 말을 바꿔도 되는가. 침묵은 언제 말보다 나은가. 죄인이 아니라 죄가 사라지기를 빌라는 브루리아의 고침.
사실인 말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때가 있는가.
의원 아바 우마나는 치료비를 말하지 않았다. 환자는 나가면서 문 밖 상자에 돈을 넣었고, 낼 수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갔다. 그는 누가 넣고 누가 안 넣는지 보지 않았다.
마르 우크바는 이웃 가난한 사람의 문틈에 날마다 동전을 밀어 넣었다. 누가 주는지 들키지 않으려고 끝까지 몸을 숨겼다(케투봇 67b).
빌려주는 것이 그냥 주는 것보다 크다(샤바트 63a). 받는 사람이 덜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주석가들은 풉니다.
주면서 누가 받는지 본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서로를 모른다
빌려주어 스스로 서게 한다
받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지 않게 주는 법을, 다섯 편에 걸쳐 묻습니다.
배움의 문턱(수강료·시간·자격)은 배울 사람을 걸러 내는 장치인가, 배울 사람을 잃는 비용인가.
힐렐이 학당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스승들이 지붕 위의 힐렐을 알아챈 계기는?
아가다: 법 조항이 아니라 이야기·일화로 된 층위. 이 시리즈가 다루는 부분입니다.
돈이 없던 날, 눈 속 지붕 창에 엎드려 수업을 들은 힐렐.
다음 세상을 받을 사람은 학자가 아니라 시장의 어릿광대였다.
기적과 하늘의 목소리도 다수의 해석을 이기지 못했다.
캐롭나무를 심는 노인과 칠십 년을 잠든 호니. 하브루타의 어원.
잘못 간 초대장과 침묵한 랍비들이 성전을 무너뜨렸다.
1~29편, 여섯 부를 한 장에 꿴다. 시리즈 전체의 지도.
샴마이는 자로 밀어냈고, 힐렐은 한 문장을 주었다.
누가 넣고 누가 안 넣는지 보지 않은 의원 아바 우마나.
여덟 편 모두 여섯 단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열려 있습니다. 한 편만 읽어도 이 책이 어떻게 묻는지 보입니다.
부모와 아이가 한 편씩 읽고, 2단계 하브루타를 짝이 되어 해 보세요.